제11회 경북일보 청송 객주 문학대전 수필부문 금상

by 책읽는 조종사



바람에 따라 정처 없이 떠다닌다. 둥실 두둥실. 바람에 몸을 맡겨 그저 흘러간다. 새하얀 뭉게구름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 안기고 싶다. 푹신푹신할 것만 같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허상이다. 안개가 하늘에 떠 있으면 그게 구름이다. 산에 걸쳐 있는 구름을 본 적이 있다. 그 산을 올랐을 땐 구름이 아닌 짙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생각과는 다른 구름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본모습을 봤을 때와도 비슷하다. 멀리서 보았거나 말로 들었던 사람을 가까이서 실제로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미지와는 다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구름과도 같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차이가 있었다.

구름은 다양한 모양을 띤다. 양털 모양의 권적운, 줄무늬 모양의 권운, 흑색 구름은 고층운, 눈과 비를 내리는 회색 구름 난층운, 수직으로 두껍게 발달한 적운, 수직으로 발달해 탑 모양을 이루는 적란운까지 그 종류와 모양은 다양하다. 우리의 성격과 모습도 구름과 같다. 화가 있어 보이는 사람, 인자한 느낌을 가진 사람, 평범한 사람 등 다양한 모습과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 바람에 따라 정처 없이 흐르는 구름처럼 우리도 시간에 따라 정처 없이 흘러간다. 그저 흘러가지 않고 목적을 갖고 살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시간의 영향을 받아 살고 있다. 공평하게 같은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하느냐는 우리 몫이다. 구름과 다른 것은 구름은 자기 의지는 없다. 그래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산다. 운이 따르는 대로 모양을 갖고 눈과 비를 갖기도 한다.

구름 운이 좋아야 비행도, 항해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운이 나빠 난층운처럼 악기상을 만나게 되면 비행에 위험이 따른다. 구름이 바다에 깔리면 안개가 되고 해무까지 조우하면 항해에 지장을 초래한다. 이 모든 걸 운(구름)에 맡겨야 한다. 행운과 구름 운은 다르듯 비슷하다. 적어도 비행과 항해에 있어서 운이 모든 걸 좌우한다. 구름이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따라 비행 루트가 정해지고, 비행 스케줄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운고가 너무 낮아 제한치에 걸리면 비행은 할 수가 없다. 짙은 안개나 해무가 바다 위에 깔리면 항해도 제한이 된다. 그러면 배도 뜰 수가 없다. 저시정으로 출항 자체가 불가해진다. 운이 모든 걸 결정한다. 그래서 항상 출항 전, 비행 전 기상을 자세히 파악한다. 며칠 후의 기상도 예측하여 스케줄을 셋업한다. 그런데도 스케줄은 항상 바뀐다. 기상이라는 건 정확한 예측이 어려워 당장 1시간 후의 기상도 정확히 맞출 수가 없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듯이 구름도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의 앞길도 마찬가지다.

크나큰 운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비행 중에 그 속에 갇혀 새하얀 풍경만이 항공기 앞을 가득 채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이 속을 벗어날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혔다. 점점 식은땀이 났고 비행착각이 올 것만 같았다. 비행 교육을 받는 교육생 신분이었기에 옆에 탄 교관님은 관여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요령인지 잔잔히 지켜봤다. 고도가 높았기에 안심은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 산을 마주할지 몰랐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야 했다. 우선 고도를 더욱 높였다. 혹시라도 인근에 동고도 장애물이 있으면 큰일이 나니깐 그게 안전한 듯 보였다. 높여도 높여도 뚫리지 않았다. 적란운 속에 들어온 듯했다. 항공기의 최고 고도까지는 여유가 넘쳤지만 한겨울에 이랬다간 큰일 난다. 기온이 떨어지며 수증기가 항공기 동체에 달라붙거나 장비를 얼게 할 수 있기에 무작정 고도를 올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다행히 그날은 여름이었다. 마침내 구름 위를 뚫었다. 그때의 안도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구름 속에 들어가 헤매던 그때가 위기의 순간이었다. 가급적 구름 속을 피해서 비행을 한다. 계기만 보고 하는 계기 비행 절차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가능하다면 구름을 피해서 비행을 하는 편이 안전하다. 구름은 내가 가진 운을 시험했다. 아직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많은가 보다. 아직 내 운은 그 효력을 갖고 있다.

우리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게 일명, 럭키라고 하는 운이다. 그렇지만 그 운도 거머쥘 수 있느냐 없느냐도 능력이다. 준비된 자에게 운이 따랐을 때 그 운을 쟁취할 수 있다. 운이 나에게 왔지만, 그 운을 잡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렇기에 운을 기다리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게 운을 기다릴 것인가. 바람에 맡겨 흘러가는 대로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준비하여 운이 왔을 때 그 운을 거머쥘 것인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건 어쩌면 나 자신일 수 있다. 운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기에 운을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다. 운이 좋았다는 말은 모두에게 통용된다. 다만 운의 정도를 늘리려면 어느 정도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운이 빠져나간 여백만큼 노력으로 그것을 채울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구름 운과 행운의 운, 두 가지 모두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운이 따라주는 삶을 살고 있다. 운을 알아보고 그 운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운이 좋아 항공기 조종사가 되었고 어쩌면 운이 나빠 긴장 속에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구름을 피해 가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정면 돌파를 한다. 피하기만이 능사가 아닐 때가 있다. 구름을 피해서만 가는 게 능사가 아닐 수 있다. 구름을 피하다가 장애물에 맞닥뜨리거나 경로를 이탈하여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운이 따르기만 바라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평생 운을 기다리다가 아무것도 못 해볼 수 있다. 구름을 적절히 피하기도 하고 정면 돌파하기도 해야 하는 게 삶이다. 행운을 바라보는 요령만 피울 게 아니라 직접 행운을 만들어 가야 행운이 나에게 온다. 운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심사평


문학 지망생들에게 꿈이 된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이 열한 번째 열매를 거두었다. 총 3,034편 중 시 1,975편, 수필 816편, 소설 243편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편수만큼 심사인들의 설렘과 압박감도 커진다. 예심과 본심 심사인들은 ‘에라토스테네스의 체’로 작품을 걸러내는 심정으로 숙고하고 또 숙고하였음을 밝혀둔다.

가족사와 같은 진부하고 낡은 소재, 틀을 만들어놓고 끼워 맞추듯 쓴 글, 어디선가 많이 본 문장을 인용한 글, 지극히 개인적인 스토리라서 일반화되지 않은 글, 가르치려 하거나 정보를 나열하는 주지적인 글, 문장은 미려하나 공감이 부족한 글은 솎아냈다.


수필은 본인이 체험한 일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깊게 사유한 다음, 재미나 감동으로 독자에게 형상화하여 보여주면 독자는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전달받게 된다. 즉, 수필의 척추는 진정성 있는 체험, 재미 또는 감동, 의미 전달이다. 수필은 기록이 아니라 찐득한 행동 스토리다. 그래서 수필은 맛과 멋을 갖춘 요리다.

요즘 대세인 <흑백요리사>의 에드워드 리는 요리를 수필처럼 말했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길었고, 돌아가서 고치고 싶었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가야 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닮은 비빔밥을 만들었다. 비빔밥의 진부함을 벗어버리고자 비비고 튀긴 다음 참치로 말아 공처럼 만들었다. 심사위원이 숟가락으로 먹나요? 포크로 먹나요?라고 물었을 때, 나이프로 잘라 먹으라는 말에 모두 전율했다. 지금까지 수필은 개인의 과거사로 재탕되어 왔다. 이제는 수필도 창의성과 젊은 소재로 나이프를 써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한 편의 글이 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 행동화가 수필의 큰 장점이다. 박찬웅님의 <운>은 구름의 ‘운’과 사람의 ‘운’을 창의적으로 형상화 한 부분이 큰 점수를 받았다. 세상사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공모전도 예외는 아니다. 박미자님의 <맹지>는 길이 없어 버려진 땅처럼 막막한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준 형상화가 잘 된 작품이었고, 박정선님의 <내 삶이 소중했듯이>는 반려견이 가족이 된 요즘 시대, 안락사를 통해 우리의 생과 사를 생각할 여지를 준 젊은 글이라는 것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이외 작품도 나름의 애정이 느껴졌기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올해 수상의 기회를 놓친 분들은 내년에 다시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부탁드린다.


심사위원

구활, 이동욱, 주인석



수상 소감문


운을 기다렸습니다. 운이 언제쯤 나에게 올지 가만히 기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먼저 용기 내 도전했습니다. 청송 객주 문학대전은 운을 시험하기 위한 훌륭한 시험대였습니다. 제 운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기회가 왔고, 그저 잡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둥실둥실 구름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안개입니다. 작가의 길은 멀리서 보았을 때 구름처럼 멋들어져 보였습니다. 그 구름 속에 들어가 직접 펜을 잡고 글을 쓸 때는 짙은 안개에 깔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선명하게 앞이 보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글쓰기와 독서를 등대 삼아 나아갔습니다.


매년 100권 읽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듭니다. 독서의 힘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운이 좋아 수상을 하게 되었지만, 그 운을 잡게 된 것은 꾸준한 독서였습니다. 독서를 해서 사고의 폭이 넓어졌고, 독서를 해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수필을 마음 잡고 쓴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족함이 엿보였을 테지만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로 상을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겸허히 받아들여 저만이 색이 담긴 수필을 계속해서 쓰겠습니다. 덕분에 생텍쥐페리처럼 조종사이자 작가의 길을 가고 싶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항공기 조종을 하며 느낀 감정을 담은 이 작품에 좋은 평을 주신 심사위원분들과 경북일보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을 쓰는 것을 묵묵히 지지해준 단짝인 아내, 그리고 부모님을 비롯하여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끝으로, 구름 속에서도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게 보우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