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시대가 무정에 그치지 않기를

제33회 전국고전읽기 백일장대회 본선 진출작 / 특별상

by 책읽는 조종사

무정한 시대가 무정에 그치지 않기를
- 춘원 이광수, <무정>을 읽고

이 책이 발간된 시기는 1910년대이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질투에 대해 무지했던 구시대가 저물어갈 무렵 등장한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이다. 우리 고전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이 작품이 식민지 시기에 8쇄 인쇄라는 기록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배경엔 자유로운 연애상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과 그와 동시에 민족을 위한 계몽적 이상 및 민족 주체의 확립을 이끌어 나간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적인 인기 또한 누릴 수 있었다.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취적으로 그려서 많은 이들이 열망하였다. 당시엔 식민지에서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교육이라고 생각했으며, 교육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자인 춘원 이광수는 나중엔 비록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인들을 깨우쳐 조선이 자주적인 독립을 할 수 있게 글로 그 열망을 표출하였다.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이 등장하며 사랑도 스스로가 쟁취하는 시대로 변화하는 시기에 맞춰 자유로운 연애상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주인공 형식이 영채와 선형을 두고 갈등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영채는 구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고 선형은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상징이다. 구시대에서 신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구시대의 여성, 영채는 형식의 은사인 박진사의 고명딸로,박진사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자 자기 몸을 희생하여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기생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진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영채는 고아가 된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후 영채는 형식을 찾아갔고 여기서부터 형식은 신식 교육을 받은 선형과 은사인 박진사의 딸 영채 사이에서 갈팡질팡 심적인 갈등을 시작한다. 기생이 되었으나 어릴 때 형식에 마음을 주었던 영채는 순결과 지조를 지키고 그 누구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생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형식은 쉽사리 영채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식 교육을 잘 받은 선형과 영채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을 애간장 타게 그리고 있으며 자유로운 연애상에 익숙지 못한 세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한 형식은 결국 영채가 죽은 줄로만 알고 선형과 약혼을 하고 미국에 갈 준비를 서두른다. 영채는 그토록 지켜왔던 정조를 성폭행당해 강제로 빼앗겨 자신의 세상이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여정에서 신여성 병욱을 만나 이제껏 자신이 맹신한 사회적으로 주입받은 생각들이 다 헛것임을 알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앞으로는 자신이 주도하는 자기 삶을 살기 위해 죽지 않고 일본 동경 유학길에 나선다. 미국에 오르는 형식과 선형, 그리고 동경 유학을 떠나는 영채, 병욱은 우연히 열차를 같이 타게 되고 그 와중에 물난리로 많은 수재민이 생긴 상황을 우연히 만난다. 형식과 병욱 일행은 수재민을 구호하기 위해 작은 음악 콘서트를 열었고 이러한 행동에 많은 이들이 감화 감동을 하게 된다. 성황리에 유학길에 오른 이들은 신식 문물 교육을 받고 돌아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전파하여 조선이 점차 살기 좋은 나라로,그리고 진취적이고 자주적인 나라로 거듭난다는 결말로 저자의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 “무정”인 이유는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고,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목을 “무정”으로 지었다고 생각한다. 무정하던 이 시대의 세상인 식민지 시기를 평생 어둡게 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제목에 담겨있다. 무정한 세상을 극복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계몽하는 것, 교육받고 실천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유로운 연애에 소설의 내용이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 공통된 이상인 나라를 구국하기 위해 형식 등의 일행이 유학길에 올라 신식 문물을 교육받고 돌아와 조선을 바꾸길 바라는 마음을 가감 없이 작품에 담았다.


고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가치가 시들지도, 바래지지도 않고 늘 현재에 대입하여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작품을 뜻한다. 지금까지도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 책은 가히 고전으로서 우리나라 근대소설을 이끄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을 현시대에 대입하여 생각해보자면, 현재 우리 시대 사람들은 자유로운 연애를 표방하고 있지만 온전한 사랑으로 결혼을 하기보다는 서로의 집안 배경과 재산 등을 두고 서로를 재며 결혼에 신중을 기한다. 결혼정보회사는 성업을 이루고 있으며, 비슷한 집안끼리의 결혼을 선호하는 추세다. 형식 또한 기생인 영채가 못내 아쉬웠기에 쉽사리 마음을 주지 못하였으며, 재력이 많은 집안인 선형에게 더욱 끌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혼관에 관한 생각이 100년 전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학에 관한 생각도 100년이 흘렀지만 엄청나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유학을 장려하고 독려하는 분위기가 있으며, 유학파에 대해 여전히 엘리트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식민지 시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으로 유학을 최우선으로, 최고로 생각했던 100년 전 당시와,지금 시대에는 이왕 배울 거면 해외에서 배우고 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유학의 필요성에 대한 정도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와 비견할 만한 부분은 지식에 관한 부분이다. 이 책이 출판된 시대에는 지성인을 최고로 쳤으며, 형식은 비록 중등 교사였지만 주변으로부터 명실상부 지성인으로 불렸고 여럿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의 장인이 된 김 장로 역시 평판이 좋았던 “지성인, 형식”의 이미지 때문에 그를 자신의 사위 삼으려 했다. 이 시대와 다르게 현시대에선 지식이 AI에 대체되어 지식의 쓸모에 대한 말까지 나온다. 계산도,번역도 해주는 시대가 도래하여 점점 우리의 일을 대신해 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과연 지식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논점을 다루는 책들까지 등장했다. AI에 의하여 많은 직업이 대체될 것이라고 하며,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신생 직업들이 생기는 속도보다 없어지는 직업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지식에 대한 위치는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지성의 종말을 막으려는 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AI가 많은 일을 대신해 주는 이 시대에서 오히려 지능형 기계에 우리의 작업을 맡기고 뇌에 부담을 덜어내서 생각의 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넷과 AI가 알아서 다 찾아주고 대신해 주는 세상에서 이렇게 고전을 탐구하고 독서를 하는 이유엔 ‘아는’ 것에 국한되지 않으며 깊은 사유와 사색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마땅히 ‘알아야’하는 것까지 알기 위함이다.


이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형식이 선형,영채,병욱에게 힘있게 강조하며 했던 말이다.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어떻게요?”
“교육으로, 실행으로.”


이 장면은 수재민을 구호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작은 음악회를 열어서 모금 활동을 하고 난 후의 결연이다. 앞부분에 설명한 저자의 열망이 가득 담겨있는 부분으로 계몽으로 조선이 바뀌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물에 빠진 수재민을 보고 뛰어들어 건져 주겠다는 생각은 잠시는 효력이 있을 수 있으나 미봉책이다.


다만, 교육으로, 실행으로 가르쳐 문명을 주고 인도하는 행위는 능히 무정한 식민지 국가로 전락한 조선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 장면이다. 약간은 뜬금없이 사랑 이야기에서 계몽주의적인 요소의 등장이 이질감 느껴지기도 했지만, 교훈을 담으려는 저자의 의도와 당시 문학의 시대적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무정한 시대가 무정에 그치지 않기를.


춘원 이광수의 <무정>은 세기를 뛰어넘는 명작, 우리 고전, 첫 근대 장편 소설이기에 많은 이들이 꼭 읽고 문학적 사고의 폭을 넓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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