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자의 진술

제5회 범죄피해 회복 희망수기 공모전 특별상

by 책읽는 조종사

나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고등학생 때 지속적인 구타를 당해 온몸에 멍이 들었다. 각목 등으로 맞기도 했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선후배 간의 규율 잡기가 주된 이유였다. 기숙사 학교였기에 기숙사 생활 중에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다. 중학교도 기숙사 학교였다 보니 맞는 게 익숙했다. 처음엔 어딜 가나 폭력이 존재하거니 생각했다.

중학생 때는 직접 맞진 않았고 가장 친한 친구와 룸메이트 동생의 폭력을 목격했다. 어느 날, 친구의 얼굴이 매우 좋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울면서 나에게 이제껏 맞은 얘기를 꺼냈다. 룸메이트 선배가 등 위에 공을 올려두고 엎드려 뻗치는 자세를 시키는데, 그때 공이 떨어지면 맞는 식이었다. 룸메이트 동생은 기숙사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태권도 띠로 이층 침대 계단에 묶인 채 맞았다. 구타가 끝나고 선배가 나가자 동생은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시늉했다. 동생을 안고 ‘우리 힘들어도 견디자, 버티자’ 했는데 얼마 안 있어서 결국 자퇴를 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서 가장 친한 친구의 맞은 얘기를 듣다 보니 너무 화가 나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 곧장 말씀드렸다. 결국 친구를 괴롭힌 선배는 전학 절차를 밟게 되었다. 그 뒤, 전학 간 선배의 친구들의 은은한 무시와 괴롭힘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잦은 이사가 힘들었기에 중, 고등학교 전부 기숙사 생활을 했다. 고등학교는 더한 곳이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전체 집합 시키는 문화가 있었으며 집합시에는 항상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어지는 집합이 끝나면 무릎이 잘 안 펴지고 다리의 피가 안 통해 얼얼했다. 이 정도는 버틸만 했다. 어느 날, 우리가 밤에 안자고 떠드는 소리를 듣더니 화가 난 선배들이 운동장에 집합 시켰다. 엎드린 자세에서 맞다가 소리를 지르니 학교 근처 공사장으로 이동을 했다. 그곳에서 각목 등 공사장 물품들을 이용하여 맞았다. 새벽 내내 맞았다. 다음날 온몸에 멍이 들어 걷기조차 힘들었고, 누가 몸을 살짝만 스쳐도 소스라치게 놀랬다. 선배들과의 관계는 극에 치달았고 한 번 그렇게 때리고 나니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양치하다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친한 척을 했다는 이유로 머리에 싸커킥을 맞아 쓰러지기도 했다.


때리는 폭력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성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 엉덩이를 깐 채 눕힌 다음 그 안에 커피믹스를 붓는다던가, 콘돔을 주면서 바지를 벗기고 끼워보라고 시킨다던가 등 직접 당한 것만 여러 번이다. 2학년에 올라가면 조금은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나아지지 않고 후배들 보는 데에서도 우리를 향한 폭력은 계속되었다. 폭력에 치를 떨다 결국 모든 피해자를 모아 교무실로 찾아가 선배들의 만행을 알렸다. 부학생회장이었기에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부학생회장에 출마한 것도 폭력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결국 폭력에 가담한 선배들 전부 강제 전학에 보내져 더 이상의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부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나선 학생회장에도 지원하여 당선되었다. 중학생 때 내 작은 행동으로 폭력을 알려 더 이상의 폭력을 막았던 것처럼, 고등학생 때에도 폭력을 막고 싶었다. 내 대에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3년 내내 학생회 임원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3학년 땐 내 친한 친구에게 맞았다는 후배의 신고를 받았다. 그 뒤 곧바로 조치해서 친구를 강제 전학 보냈다. 다른 친구들로부터 매정하다는 얘기도 듣고 너무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내 사전에 폭력은 용납될 수 없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눈 감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가 당한 아픔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폭력에 대한 후유증으로 가끔 그때의 사건들이 꿈에도 나온다. 한 달가량의 미술 심리치료를 받았지만, 그걸로는 해소가 안 되는 무언가가 남아있다. 선배들의 진심 어린 사과도 듣지 못했고 합의서만 달랑 내밀며 사인해달라는 행태가 머릿속에 남아있다. 10년도 더 된 폭력이 아직도 가슴 한편엔 고스란히 아픔으로 전해진다.


어딘가에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 이야기를 이 글에서 속 시원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나보다 더한 피해를 본 이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을 전하고자 과거 피해 사실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아팠지만 이겨냈고 지금은 극복해서 잘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현재 나는 장교가 되어 군대에서 일어난 폭력의 온상을 고발하고 있다. 가해자인 친했던 간부를 징계위원회를 열어 타 부대로 전출시키기도 했다. 지금도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은 용납하지도, 봐주지도 않으려 하고 있다. 이 작은 행동이 범죄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계속해서 불의에 맞서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도 범죄피해자였기에 그들을 대변하여 가해자들에게 온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러면 폭력에 아프고 멍든 사회에서 조금은 더 밝은 사회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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