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소풍
제33회 시민예술제 하반기 백일장 공모전 장려상(산문)
하늘길 소풍
비행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다. 여름날, 실로 소풍 같았던 비행을 한 적이 있다. 하늘이 맑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구름이 가득한 날의 비행은 여간 두려운 게 아니어서 오히려 잘됐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자니 실로 높아 보인다. 문득 소풍을 떠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마침 오늘이 생일이라 하늘을 포함한 모든 게 아름답게 느껴지나 보다. 학창 시절의 소풍날 같은 기분이다.
소풍을 떠나는 날의 발걸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고 저절로 콧노래는 흥얼거리며 나온다. 웃음은 막을 길이 없고 심장은 요동친다. 설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소풍 가는 날이다. 오늘은 어떤 일이 펼쳐질지, 도시락엔 어떤 반찬이 들었는지, 수업을 빼먹고 소풍을 가는 것이기에 모든 게 기대된다. 소풍 전날엔 잠을 설친다. 설레는 기분이 주체가 안 되어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잠긴다. 침대에 고요히 누워있으면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였지만, 아침엔 자명종 없이 눈이 벌떡 떠진다. 준비에 서두른다. 콧노래를 부르며 음료수와 과자를 가방에 하나씩 넣고 멀미 방지용 스티커를 귀밑에 붙인다.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학교에 나선다.
오늘은 절로 비행하고 싶은 날이다. 소풍날의 발걸음처럼 설레는 기분으로 비행 준비를 한다. 기상 파악을 하고 비행 전 브리핑을 한다. 비행 전 특이사항은 없으며 항공기 상태도 양호하다. 모든 게 순조롭다. 오늘의 비행은 공중조작이다. 지형지물을 익히고 공중에서의 조작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연습하는 훈련이다. 교관님과 브리핑을 하며 월출산 국립공원으로의 비행 스케줄을 계획했다. 소풍 떠나기 딱 좋은 하늘길이다.
활주로를 이륙하여 월출산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높은 산들이 한데 어우러져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푸른 나무들이 빼곡히 자리 잡아 숲을 이루고 우리를 맞았다. 산들 사이에서 불어오는 산곡풍을 주의하여 산 근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그저 위에서 내려다볼 심산이다. 높은 산을 위에서 바라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아래에서 본 산은 까마득히 크고 높아 보이지만 위에서 본 산은 미니어처처럼 앙증맞다. 그럼에도 경관이 가히 아름답다. 소풍날의 기분이 물씬 풍긴다. 발아래 펼쳐진 한 폭의 그림을 발로 지그시 밟으며 걸어가는 게 비행의 묘미다.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더라도 하늘에 오르며 발아래 펼쳐진 광경을 보면 힘든 순간이 바로 잊힌다.
돌이켜보면 소풍과도 같은 인생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소풍을 떠나듯 전학 다녔다.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다섯 번의 전학을 다니며 떠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학교에 대한 설렘이 있었다. 소풍 전날처럼 전학 전날엔 잠을 못 이뤘다. 중고등학교는 대안학교에 진학하여 소풍과도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활동 중심의 학교생활을 했다. 포트폴리오를 풍성하게 하여 대학에 운 좋게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다. 대학에선 자유로이 공강 시간을 활용해서 친구들과 소풍을 종종 떠났다. 벚꽃이 가득 핀 날엔 돗자리를 들고 여의도 주변으로 소풍을 갔고, 날이 좋은 날엔 교수님을 설득해 야외수업을 했다. 소풍 같았던 학창 시절이었다.
대학을 마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입대 전날은 소풍 전날처럼 잠을 못 이뤘다. 군에 입대해서는 설렘의 느낌과는 상반된 느낌을 품고 소풍을 갔다. 유격훈련장으로 떠나는 날이 그러했고, A형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자는 캠핑과도 같은 훈련들이 소풍처럼 느껴졌다. 소풍날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각종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창공을 누비며 비로소 진정한 소풍을 마주했다. 매일 매일의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소풍과도 같은 인생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게 됐다. 하늘에서 경험하는 순간들은 그 어떤 소풍보다도 설렘 있고 긴장됐다.
소풍날 같은 기분을 지금은 가족을 통해 느낀다. 설렘이 가득했던 연애 시절을 지나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다. 매 주말이 소풍이다. 아이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해 줄지 아내와 고민하며 아이 맞춤형 소풍을 떠난다. 소풍 짐을 싸듯 여행 하루 전엔 준비물 체크에 온 힘을 쓴다. 만반의 준비를 하여 아이와 소풍을 떠난다. 다음 소풍은 어디로 갈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소풍이 꼭 어디론가 떠나는 건 아니다. 독서를 하며,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그 세계 속으로 소풍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SF영화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 이유가 있다. 그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소풍을 떠날 수 있기에 지친 일상에서의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소풍을 다녀온 듯한 느낌을 품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면 더욱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소풍을 통해 회복을 경험하고 일상에서의 피로를 푼다. 앞으로의 매일이 소풍과도 같기를, 마주할 나날들이 소풍처럼 느껴지기를.
마주하는 매일이 소풍과도 같다면 어떨까. 소풍 가는 느낌으로 하루를 산다면 기대감을 품고 다음 날을 준비할 수 있다. 소풍과도 같은 순간순간들이 모여 기대감과 설렘으로 하루를 보낸다. 소풍과도 같은 기억은 평생을 살아가게 만든다. 실로 아름다웠던 하늘길 소풍이 그러하다. 강렬했던 하늘길 소풍의 추억을 품고 창공을 소풍 떠나듯 누비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