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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Sep 09. 2020

67. 정답은 없다

독서모임 꾸리는 법 / 원하나 / 유유


70. 정답은 없다

독서모임 꾸리는 법 / 원하나 / 유유


(200706) 200821 직관적인 제목이다. 일명 참고서, 해설서 같은 이런 류의 책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하고 책의 가치를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지만 책을 통해 학문이 아닌 기술을 배움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편이다. 철학이나 인문학처럼 생각의 깊이를 더해야 하는 학문의 경우 책만큼 좋은 교재는 없겠지만 어떤 분야의 기술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일명 교재라 불리는 책이 필수적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때의 책은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도구와 같은 보조적인 역할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연애를 책으로 배워서 그렇다’라고 하는 표현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의미를 나는 연애만이 아니라 다른 기술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어떠한 것들을 책으로 배울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책만으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레 기술서에서 나를 멀어지게 했다.


대학교 때부터 한창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까지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것은 문법 혹은 화법이었다. 그 자체의 어려움은 기본으로 하고 그 외에 특히 문법을 배우거나 가르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떠한 규칙이 모든 것에 적용된다는 전제 하에 묻는 질문이었다. 예를 들어 사이시옷 규칙으로 치자면 이러이러할 때에 ‘ㅅ’을 써야 하는데 왜 이 단어에서 나오지 않느냐, 왜 이때는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나오느냐 하는 질문 따위였다. 규칙에 맞춰 말이 생긴 것이 아니라 말이 먼저 있고 그 말을 들여다보니 일정한 규칙이 있기에 그것을 규칙으로 정리하고 그 규칙에 맞춰 표준어를 규정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규칙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실제 규칙을 배우다 보면 그 사실을 잊게 되어 그러한 경우도 있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문법의 규정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의 규칙들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수많은 규칙들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러이러한 불편함이나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 그것을 방지하고자 규칙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배움에 있어서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잊게 된다. 또한 어떠한 세계에 입문을 하게 되면 보통 처음부터 복잡한 사실을 한꺼번에 접하기보다 이해하기 쉬운 혹은 이해하기 쉽게 일부를 접하게 되곤 한다. 실상은 딱 떨어지지 않는데 우리가 그 분야에 첫 발을 내딛게 되면 잘 모른다는 핑계로 딱딱 정해지고 정리된 솔루션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소위 전문가라 부르는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이러할 때는 이러하고 저럴 때는 저러하다는 것을 수많은 정보와 경험 혹은 사례의 축적을 통해 ‘이러저러할 때는 대체로 이러저러할 것이다.’라는 지식을 쌓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모임에 대한 직접 경험이 전무하고 간접 경험만 무성했던 나는 독서모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무언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독서모임을 하고자 하는 나만의 청사진이 현상 사진만큼 뚜렷했지만 혹시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를, 내가 놓쳤을지 모르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던 책방(토닥토닥)에서 이 책을 만났다. 이미 이 책이 나온 줄 알고 있었고 유유출판사 러버이기도 한 나였으나 이 책을 사야겠다 하는 마음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전과 달리 독서모임에 대한 갈급이 생긴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래서 나는 종종 사람만이 인연이 아니라 책도 인연이 운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본문|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갑자기 변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며 독서모임을 한다고 해서 지금 고민하는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수고로운 독서를 해내고 책 한 권을 함께 읽으며 다양한 타인의 시각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다양해진 삶의 빛깔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감정의 온도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을 찾아내는 요령을 얻을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하면서 시야가 점점 확장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틀린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는 일을 의심쩍어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오히려 습관화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에 대한 믿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독서모임이 중요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조금 막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누가 물어봤을 때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만한 정보나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독서모임 베테랑답게 독서모임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진솔한 경험을 솔직 담백하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래그래’ 맞장구를 치며 재밌게 책을 읽어나갔다. 저자는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하려고 하는 이유를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규칙적인 독서를 위해, 독서 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감상을 공유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훈련을 위해, 인문학 공부를 위해, 책을 통한 친교를 위해. 비슷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이 이유들이 독서모임의 성격을 결정짓게 된다고 생각했다. 즉 나 혹은 우리가 독서모임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어디에 해당하는지 파악하면 모임을 진행함에 있어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 규칙적 독서와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훈련, 책을 통한 친교였다. 그밖에 내게 인상 깊게 다가왔던 조언은 무턱대고 이야기를 하기보다 각자 책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한 주제인 발제는 준비하여 여러 개의 발제 중 일부를 선택하여 이야기해 보는 것과 책에 대한 나만의 한 줄 평 작성 하기, 기억에 남는 구절 나누기 등이 있었다.


내가 이 책을 택했던 이유가 명확했기에 나는 이 책에 대한 기대 또한 확고했다. 그런 만큼 무언가 신박한 것을 기대했으나 이 책은 나의 그러한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초보자의 실수를 범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진짜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했다. 그러한 생각과 노력이 본문 곳곳에 보였다. 무엇보다 자기 계발서의 전형적인 화법인 ‘이것은 이것이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혹은 실패한다’와 같이 확정적인 투의 이야기가 없어서 더욱 좋았다.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독서모임에 대한 내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가 부드러운 조언으로 다가와 저자가 알려주는 대로 습득하기보다 내게 주어진 상황에 맞는 내가 원하는 답을 찾고 구체화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가득 풀어놓고서 말미에는 ‘독서모임에 정도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묻고 이어령 선생이 하신 말씀을 인용해 독자들의 독서모임을 응원하고 있다.


본문ㅣ (이어령) ‘여러 사람이 운동장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면 일등과 꼴등이 생기지만 각자 저마다의 길로 달리면 모두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비극은 남과 비교하면서 조바심을 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사람이 걷는 길은 참고만 하고 내 길만 묵묵히 간다면 모두 저마다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 역시 정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오로지 각자의 정답 혹은 나만의 답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내가 책만들기 수업을 할 때도 종종 하는 말이다. 책만들기를 할 때도 내가 배우고 익힌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을 뿐 꼭 이렇게 저렇게 해야만 하는 정답은 없다.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할 경우 결과물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질 뿐이다. 책은 온전히 혼자 읽는 것이지 함께 읽을 수 없다는 의견에 반대보다 동의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고 독서 모임에 다소 회의적이었던 나였지만 이 책을 통해 ‘함께 읽기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책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독서모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책이든 사람이든 둘 중 하나만 좋아해도 독서모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처럼 그 목적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본문| 골고루 읽고 다르게 생각하기 위하여/ 책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때로는 책을 통해 새로운 일을 찾고나 시도해 보곤 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 앞에서 지치지 않고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 책= 이전에 몰랐던 생소한 분야를 알아 가기에 적합한 매체 /타인의 생각 궁금해짐- 책에 적힌 작가의 생각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다른 사람들은 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 알고 싶어 함 / 같은 책을 두고도 다채로운 시선이 교차하고 그 속에서 접점이 생기기도, 차이점이 더 또렷해지기도 한다. / 책에 대한 소감을 타인에게 설명하려면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도 필요/ 의외로 체계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어 / 단편적인 대화 위주 / 읽은 책을 제대로 소화한 기분 /대화의 중심에 책이 있으니 단순한 일상 이야기를 반복하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깊이 있는 대화가 겹겹이 쌓이며 서로 간의 연결 고리도 단단해짐/ 어떤 책을 고르는가 보다는 어떻게 발제를 해야 좀 더 다양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까를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 발제 준비하듯 읽는 습관 / 발제를 준비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책을 반복해서 곱씹어 읽는 것입니다 / 두 번을 읽어도 여전히 좋은 표현만 모임에 가져가는 거죠/ 책은 지식을 전하기도 하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기에 읽고 나면 여러 가지 감상이 떠오릅니다.(▶책으로 내 이야기하기) /한 권의 책을 지정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 독서 모임의 수많은 장점을 제대로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 /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이 가진 여러 모습 중 일부를 선택해서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유행은 돌고 돈다는 것이었다. 유유의 땅콩문고는 다이제스트나 펭귄북스와 같은 문고판의 계보를 잇고 있다. 요즘 핫한(핫해진지 한참이 되었을지도) 아무튼 시리즈나 컨셉진도 이와 같은 유형의 책으로 한국형 문고판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문학에만 국한되었던 문고판이 이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발행되고 유통되고 흥하는 일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유의 땅콩문고도 그렇다. 기획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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