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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Sep 08. 2020

66. 속초에 가면 동아서점에 가자

당신에게 말을 건다 / 김영건 / 알마


69. 속초에 가면 동아서점에 가자 
당신에게 말을 건다 / 김영건 / 알마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200803 새로운 책을 읽지 못한 지 두 달가량 되어간다. 지금이 팔월이니까 두 달을 넘어 세 달을 향해가고 있는 셈이다. 올해 하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마음껏 읽는 것이었다.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 하나의 탑을 이루고도 남아 두 번째 탑을 쌓아가고 있다. 지난 4월 독서 모임을 준비하며 아주 얇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을 여직까지 붙들고 있다. ‘징하다’는 표현이 자꾸 떠오른다. 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읽기는 다 읽었으나 독서감상문을 쓰지 못해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밀린 일기를 밀린 날짜부터 써야 마음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내게는 독서감상문도 그러하다. 이전의 책을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책을 시작하게 되면 이전의 책은 영영 못 쓰게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버티고 버티다 보니 이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에 작년부터 나의 바람이던 속초 여행이 든든한 동행을 만나 갑작스럽게 추진되었다. 내 속초 여행의 이유는 ‘동아서점’과 ‘테라로사’였다. 두 곳 모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몇 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속초 여행을 갔지만 그때는 이 두 곳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동아서점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느 기사를 통해서였다. 기사는 대충 속초라는 지역에 대를 이어 운영해 오던 서점이 1대, 2대를 거쳐 3대에게 까지 대물림되어 100년 향해가고 있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일본과 달리 가업 문화가 흔치 않은 우리나라에서 2대만도 특별한데 3대라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수를 칠만 했고,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이 서점은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로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던 나는 속초의 동아서점이 책방 붐과 함께 지역에 잘 나가는 서점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서점이 잘 나간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는 것과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동아서점이 자리 잡아가고 있을 때 작년 봄에 통영 남해의 봄날에서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냉큼 데려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책을 발견했을 당시 나는 ‘기록’ 특히 공간의 기록에 한창 빠져 있을 때였다. 아마도 책공방 사사를 준비하였던 때 같기도 하다. 그렇게 데려왔던 책을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거들떠만 보고 책장에 그대로 꽂아 둔 채로 시간이 흘렀다. 밀린 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다 읽은 책의 독서감상문을 쓰지 않으면 새로운 책을 시작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속초여행 더 정확히는 동아서점 방문을 앞두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이 책을 읽지 않고 동아서점에 방문하게 되면 나는 영영 이 책을 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여행지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사전조사를 충분히 마치고 떠나는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여행 계획을 빡빡하고 디테일하게 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고 뭐가 중헌지 정도를 알아가야 나중에 덜 후회한다는 주의다. 그래서 이 책은 속초 여행을 앞둔 나에게 사전조사와 같은 관문이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추진된 속초 여행을 앞두고 조급한 마음으로 책을 붙들었다. 조급함의 반대편에는 이전에 내가 책을 읽던 습관대로 ‘세월아 네월아 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스러움도 자리를 잡았다. 두 세력 간의 경쟁에서 조급함이 우위에 있었는지, 책이 재미있어 그랬는지 나는 평소와 달리 몇 시간 만에 뚝딱 이 책을 읽어 버렸다. 어떤 이에게는 별일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아주 특별한 일이다. 내가 몇 시간 만에 뚝딱 읽은 책은 열 손가락에 꼽는다. 어떠한 책이냐에 따라서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 책을 만나는 때에 내 상태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본문 | 정말 내 얼굴을 보고 책이 연상된다면, 이 직업이 내게 꼭 맞는 옷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활동하기에 불편하지 않고 내게도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3대 사장님인 저자는 물론 저자의 아버지인 2대 사장님 또한 처음부터 ‘이 일이 내 일이다’ 하는 느낌이나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책 만드는 일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지 않았던 나에게 이 내용은 위로가 되었다. 40년 동안이나 서점을 운영해 온 분께서도 ‘항상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뭔가 부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니’ 이제 고작 7년도 채우지 못한 나야 아직 어색하기만 한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우리 선생님이 그러했듯 이 분 또한 이 일을 시작할 때(가업을 물려받으며)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던 것이 아닌 그저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리 되었다는 이야기에도 마음이 훈훈해졌다. 사십 년을 한 자리에서 그 일을 지켜온 것은 대단한 일이 분명 하나 그 시작도 남달랐다면 뭔가 거리감이 느껴져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단함의 시작은 평범했음을 알게 되니 나에게도 그런 대단함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진짜 기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 책을 빨리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나의 첫 책인 ‘책공방, 삼례의 기록’이 계속 생각났다. 사람들이 나의 기록을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이 완성도도 높긴 하지만 내 책과 알맹이가 비슷한 느낌이었다. 객관적으로는 어떠한 공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주관적으로는 꾸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쓰려했다는 점(느낌)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탓에 나는 이 책이 나의 첫 책인 ‘삼례의 기록’이 닮았다고 느꼈다. 이 책에서는 기록의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고 자신이 느끼고 생각했던 바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을 내 책과 닮았다고 느낀 듯하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지 않았다. 그냥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알맞을 듯하다. 종이에 물이 스미듯 나는 책의 내용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책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점 리뉴얼을 준비하며 저자는 ‘종합서점이라는 정체성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한 서점이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다(본문 중에서)’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동아서점에 방문해 책에 저자의 사인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아서점은 종합서점이라는 정체성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멋진 공간이었다.
 
어쩌면 100년 서점을 향해 간다는 기사를 마주했을 때부터 내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어째서 그런지 이 책의 만듦새 하나하나도 다 멋스럽게 여겨졌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이렇다 할 특징이나 개성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책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잡음을 내지 않고 하나의 음을 내는 듯한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책배 부분의 거침이었다. 일부러 그랬는지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러거나 저러거나 그 모습으로 내게 왔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본문도 표지도 일반적으로 쓰이는 종이 미색 계열의 종이를 사용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고 표지를 제외한 본문의 모든 내용을 하나의 서체를 사용해 통일감을 주고 있다. 표지 종이에 비해 본문 종이가 더 누런 편인데 그 누런 종이에 글씨를 검정 대신 갈색을 택해서 세련돼 보였다. 아마도 중간중간에 들어간 샌드 아트 느낌의 삽화가 들어가서 그것과 결을 맞추려 했거나 글씨 색을 그렇게 정해 삽화의 톤을 통일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전체가 노리끼리한 표지와 본문 사이에는 진한 카키색 면지가 들어가 어울림을 더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사람도 그러하듯 책도 하나가 예뻐 보이면 나머지 것들이 예뻐 보이고 하나가 어긋나면 나머지 것들이 아무리 예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의 등장과 함께 전국 지자체에서 이와 관련한 사업을 쏟아내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이유가 스토리텔링을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속초 동아서점은 어느 누구도 넘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그 공간만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뽐내거나 티 내지 않아도 그 공간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하고 그 공간을 고유의 특별함이 존재하는 곳으로 다가서게 한다. 이 책을 만나고 동아서점에 다녀오며 나는 스토리텔링의 바람직한 사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스토리텔링은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거나 주입식 교육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전해져 내가 이 책에서 느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미는 것이다. 나처럼 동아서점이 좋아, 동아서점에 가고 싶어 속초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속초 여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동아서점에 방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행 기념으로 닭강정만 먹지 말고 책 한 권씩을 샀으면 좋겠다. 그래서 동아서점이 어떠한 책을 특별하게 만나는 통로가 되길 바라본다. 그 영향으로 시간이 많이 흘러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면 좋겠다.
 

그 밖의 기억하고 싶은 문장
본문| 서점에 와서 책을 많이 사는 사람들은 왠지 멋지고 어딘가 기품이 흐른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어딘가 믿음이 가고 왠지 부럽다. / 좋은 기능을 갖추고 튼튼해 보이는 서가들 사이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부족함은 바로 그것들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 고작 책 한 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끊임없이 반문하고 망설이고 있는 자신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책 한 권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닐 거라며. / 책을 추천하는 일은 일을 잘 한다는 것은 구매자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뜻일 것이다. 일을 즐긴다는 것은 대체로 그것을 잘한다는 뜻일 테고 또한 말 그대로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뜻이겠다. / 틀리거나 실수했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야 할 일이다. / 책 또한 상품이므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진열되어야 한다. / 많은 순간 나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 누구나 멋진 사람을 동경하게 마련이다./ 나는 어떻게든 우리 서점을 그들이 봐 오던 다른 서점들과 다르게 보이게 만들어야 했고 차별화되는 맥을 짚어내야 했다. / 우리는 언제나 서점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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