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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an 12. 2022

70. 나도 빨리 내 책을 쓰고 싶다

책 만드는 일 / 민음사 / 박혜진 외 9명의 편집자


70.나도 빨리  책을 쓰고 싶다

책 만드는 일 / 민음사 / 박혜진 외 9명의 편집자



“좋은 글이란
빼어난 글솜씨로 쓰인 문장들의 묶음이 아니라 정돈된 사유를 탁월하게 표현한 글이고,
좋은 책이란 존재 이유가 명확한 책이다. “
_ 세계문학의 한가운데, 천정은


제목부터 내 책이다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은 ‘책 만드는 일’보다 ‘쓰고 옮기고 매만지는 사람들(본문 차용)의 이야기’가 더 적합할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관점이고 어찌 보면 헛소리에 불과하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책 만드는 일’이 제목으로서 훨씬 더 매력적이고 임팩트 있다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내 말은 정확의 잣대를 적용한다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때로는 정확성보다는 매력 혹은 상업성이 중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닌 단어나 문구를 가져다 쓰곤 한다. ‘이러한 일들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 한동안 깊이 매몰되어 있었다.


나의 결론은 ‘균형’이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정도에서의 활용은 바람직한 것이라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입는 옷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 우리가 옷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케팅은 본질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헌데 본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물론 이 책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너무나 애정 하는 ‘책만드는 일’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니 여러 생각이 떠오른 것뿐이다. 책은 이렇게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았던 생각을 이렇게 끄집어내고 생산해낸다. 참으로 희한한 물건이다. 백프로 기분 탓일지 모르나 똑같은 이야기를 인터넷 페이지에서 마주하는 것과 책에서 마주한다고 해도 체감이 다르다.


글을 쓸 때마다 가장 많이 생각하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 중 하나는 내가 자주 쓰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인데 대부분의 경우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늘 쓰던 단어를 가져다 쓰곤 한다. 마치 자석에 쇠가 달라붙듯 그 단어가 나에게 착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단어 중 하나는 ‘오랜만에’다. 이 단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나는 실제로 많은 일들에 조금만 시간이 지난도 오랜만인 것처럼 여겨진다. 어제 마신 술을 오늘도 마시며 ‘오랜만이네’라고 하고 옆에서 누가 딴지를 걸면 너랑 혹은 맥주는 이라고 슬쩍 넘긴다. 조금 과장되긴 하였지만 나의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말 정말 오랜만에 책을 다 읽고 글을 쓴다. 꽤 오랫동안 책을 읽지 못했도 읽어도 나 홀로 이어오던 독서감상문을 쓰지 못했다. 마음을 몇 번이나 다잡고 여러 번 도전을 했으나 매번 실패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면 분명 읽길 잘했다, 쓰길 잘했다 생각하며 다시 예전처럼 기운을 차릴 텐데.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입에서 넘어가지 않으니 자꾸만 피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주변에 책만 쌓아가며 지내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120페이지짜리 책이라면 이쯤이라면 내 상태가 너무 안 좋아도 현재 내 상황을 타개하는 물꼬를 틔워 줄 것만 같았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결과는 성공이다. 책의 전체 분량이 짧은 것도 한 몫했지만 그 짧은 페이지가 열 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긴 호흡을 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만들며 자신이 경험했거나 생각하고 느꼈던 이야기이니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로선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었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꿀꺽꿀꺽-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고 쓰고 싶으나 그러진 못했다. 그동안 너무 오래 쉬어서인지 한 챕터 읽고 쉬고 한 챕터 읽고 쉬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예전 습관대로 밑줄 치며 읽고, 메모하며 읽고, 메모에 밑줄을 치며 또 읽었다. 이 방식은 이 책을 ‘나’라는 체에 거르고 또 거르는 과정이다. 책 내용도 중하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 무엇을 기억하고자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와 주고받는 시간이다.


저 위에 인용 문구는 이 책에서 내가 뽑은 베스트 문구다.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한 문단으로 하는 것이 특기인 나는 딱 하나를 고르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래서 글도 짧게 쓰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훈련도 덜 됐고 실력도 부족해서겠지만) 혹 이 책의 내용에 관한 글일 줄 알고 내 글을 읽기 시작한 분들에겐 죄송한 이야기이나 이 이후에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이 책 내용이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면 되고 그것이 귀찮다면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된다. 나의 독서감상문에는 책의 줄거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이야기에는 오로지 책을 마주하며 나를 찾아왔던 내 이야기뿐이다. 나에겐 책에 나온 이야기나 인터넷에 나오는 이야기를  각색하여 내 이야기처럼 쓰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재주도 없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간다. 저 위에 베스트 문장 하나 꼽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그밖에도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이 짧은 책을 읽으면서도 메모하느라 팔이 빠질 뻔했다. 많이 엄살이지만 책의 분량에 비해 메모한 내용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어떤 내용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 계속해서 보고 또 보며 고민 중이다. 만날 이러고 있으니 시간이 미친 듯이 빠르게 흐르나 보다. 저 위에 문장과 끝까지 대결을 펼쳤던 문장은 바로 고전이었다. 아마도 책 만드는 일 전반을 맡고 있고 가장 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마케팅 혹은 영업이라 마케터의 이야기에 솔깃했을지도 모르겠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고전을 영업하는 비결, 조아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_논어 /어떤 일을 하면서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숙달되어 있으면서도 그 까닭을 깊이 알지 못하며, 일생동안 그것을 따르면서도 그 도리를 모르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이다._동양고전연구회 역주, 맹자”


이 내용을 마주하는데 오랜만에 머리에 반짝-하고 불이 들어오고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 책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문학을 디자인하기, 유진아’의 ‘돌덩이의 시간’이라는 말이다. 이 문장을 보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편집자와 미팅을 끝내고 원고도 도착해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메일을 온 걸 뻔히 알면서도 열어보지 않는 마음.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하는 반가움이 용량을 넘어 버렸다. 메일이 온 걸 알면서도 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문자가 온 걸 알면서도 문자를 확인하지 않는 마음.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고 아주 가끔 많은 일 혹은 생각이 소화가 되지 않을 때 과부하가 되어 나를 지키기 위한 멈춤의 시간이다) 나는 이를 ‘얼음’이라고 표현했는데 ‘돌덩이의 시간’이 훨씬 안성맞춤이다. 앞으로 많이 애용할 것 같다. 그 밖에도 기억하고픈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 좋은 편집자는 쓸데없는 것을 잘 걷어낸다고 하는데 난 좋은 편집자는 어려울 것 같다.


(김수영의 편집자, 박혜진) 한 권의 책에는 끝이 없다. / 끝을 확신할 수 없다./ 불멸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책밖에 보지 못했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의 언어가 100년 후에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읽힌다는 사실/ 언어는 인간의 도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사유, 그 자체이기도 해서 어떤 유행보다 더 빨리 소모되고 교체된다./ 편집이란 영원의 다리를 놓는 일/ 한 사람의 인생보다 책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건 책을 매개로 연결되는 사람들 때문이다./ 편집은 영원의 다리를 놓는 일이고, 편집자는 불멸의 메신저다. /// (보르쥬가 누구라고?, 이영준)  필연이 축척되면 우연의 형식으로 사건이 탄생한다. 겉보기에 우연처럼 보이는 것은 그 사건을 이끄는 필연의 힘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프랑스어로 먹고 살기, 박경리) 모든 것이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원문에 대한 집착이라는 함정 /// (세계문학의 한가운데, 천정은)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편집자의 일이다. / 쓰고 옮기고 매만지는 사람들 / 뵐_ 우리 눈에 비친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 / 작가의 의무와 편집자의 의무가 다르지 않다. / 23년간 전집팀을 거쳐 간 편집자들 수십 명의 끈기 있고 진지했던 시간이 분명 그 신뢰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  (편집자의 우울과 회복, 양희정) 원하느지 않는 나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면 내 안의 나도 어쩔 수 없는 괴물이 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 어떤 기질적인 특징이 평소보다 과도하게 드러나면 우울증 초기라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 / 불평이 감사보다 빨리 전염되듯이 우울은 기쁨보다 전염성이 더 크다. / “우리는 행복에 대해서는 항상 그 덧없음을 느끼는 반면,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을 때는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 우울증에 빠지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은 희망”이다. / 회복을 향한 열망은 살아있다는 뜻이다. 살아 내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생명력이다. ///  (고전을 영업하는 비결, 조아란) 마케터는 눈길을 끌 만한 문장을 뽑아내 이 책이 당장 필요한 것처럼 포장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많은 책을 읽고도 소화보다는 소비했다는 감각만이 남아 지식이 아닌 피로가 쌓여 갔다. 이런 피로는 자연히 내가 수행해야 하거나 해 온 일들에 대한 회의로 돌아왔다. 책을 통해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 삶을 바꿀 이야기와 만난다는 것은 감이 감나무에서 떨어지길 기다리기보다 훈련을 거쳐 인생 문장과 의미를 찾아 나서는 행위에 가깝다는 메시지다. / 효율과 가성비가 최고로 평가되는 세상에서 이런 일류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다. ///  (그림책 작가와의 작업, 정은정) 그림책을 만든 지 스무 해를 넘겼다. 그러고도 그림책을 만들 때마다 늘 도전이고, 애가 탄다. / 그림책은 글과 이미지가 하나의 호흡으로 움직이는 문학의 한 장르다. /// (두 번째 코스모스, 김명남) 널리 읽히고 많이 팔린다고 해서 다 좋은 책은 아니며 좋은 책이라도 안 읽히고 안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내가 참여한 책은 내재적 가치는 물론이고 대중적 호응도 뛰어나기를 바라는 욕심이 생겼다. 그 두 가지가 함께 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 (인문학을 디자인하기_유진아) 돌덩이의 시간/ 무게에 무감해질 시간 필요 / “인문 분야의 책은 주로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가치를 찾는 것도 어렵고, 무의미의 축제가 열릴 때도 함 들다.”


어쨌거나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 민음사에서 그간 어떤 책을 만들어 왔는데 궁금하신 분은 꼭 읽어 보시길. 페이지도 많이 않고 가격도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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