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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Nov 04. 2018

고급손님 방문

책공방 공방 일지

책공방 공방 일지_181102

고급손님 방문  

  


오랜만에 선생님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렸다. 책을 사랑하신다는 분들이 오셨기 때문이다. 고수는 역시 고수를 알아보는 법인지 선생님이 평소보다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화답이 술술술-이다. 마치 북을 치는 고수와 소리하는 소리꾼이 가락을 맞춰가고 주고받듯 별안간 공방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그러더니 그분 들 중 한 분은 선생님의 책을 살 사람을 거수하신 후 책을 달라 하신다. 요즘 유행하는 ‘어머, 이건 꼭 사야 해’가 젊은이들 사이에만 공유되는 감정이 아닌가 보다. 덕분에 나는 창고를 두 번이나 왔다 갔다 뛰어다녀야 했지만 오래간만에 선생님이 웃는 모습을 뵈니 이쯤이야 열 번도 해드릴 수 있지 싶다. 그렇게 순식간에 책 여덟 권이 판매되었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말이다.     



오늘 오신 분들은 기계들이 작동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 또한 누구보다 그걸 바라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재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아직 그럴 형편이 못 된다 말씀드렸다. 매주 일정한 시간에 한 사람당 만원씩 내고 시연하는 것을 보러 오시는 관람객이 한 오십 명 정도 된다면 예산 지원 없이도 시연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섯 곳에 3천 원하는 입장료가 아까운 것인지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귀찮은 것인지 모를 분들이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들어왔다가 티켓 확인을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시다가 되돌아가시곤 한다. 몰랐다고 하시는 분들 중 바로 가서 티켓 구입해 오시는 분은 열 분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하다. 대부분은 나가서 다른 관으로 향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텐데 사람이 없으면 무사통과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참 있으니 처음에 오셨던 분께서 헐레벌떡 뛰어오셔서 왜 자신에게는 책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며 얼른 책을 달라고 하였다. 다른 분들께서 기념품처럼 하나씩 구입하셨던 선생님의 책을 달라는 것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안 사면 후회할 것 같아서 이렇게 급하게 뛰어왔노라 하였다. 어떤 것을 드릴까 물으니 하니 이것도 저것도 다 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아까 오셨던 분들의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데 자신이 이곳을 소개해서 다 모시고 왔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신 선생님은 그 말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특별 증정품을 선사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분은 책공방 전집을 풀세트를 소장하게 되었다. 우리 또한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아 기념하고자 자꾸 사진을 찍으니 그러지 말고 제대로 사진을 찍어보라며 선생님과 함께 포즈를 잡으신다.    



나는 선생님에게 책을 팔아서 좋겠다고 축하한다고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선생님이 기분이 좋았던 것은 자신의 책을 판매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분들은 선생님의 책을 통해 선생님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동안 꾸준히 투자해온 애정과 시간에 대한 인정을 해준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고 나면 힘이 나고 희망을 품게 된다. 누군가가 애정을 가지고 해 온 일에 대한 인정은 앞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무언가를 애정을 가지고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누군가 애정을 가지고 해 온 일에 대한 가치를 무시하는 일은 앞으로 누군가가 무언가를 애정을 갖고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 물론 누군가가 애정을 갖고 해 온 일에 대해 무조건적 인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취향에 따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말 중요한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 몰라도 내 취향이 아니어도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이고 내가 아무리 좋아하여도 중요치 않은 것은 중요치 않은 것일 수 있다. 내가 좋아하더라도 중요치 않은 것과 내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것에 대한 기준과 판단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내게 이익이 되지 않아도 중요한 것과 내게 이익이 되어도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한 기준과 판단 그리고 인정이 필요하다.    


     

손님들이 완전히 돌아가고 난 뒤 나는 선생님께 책방에서도 오늘처럼 판매가 되면 할만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저분들처럼 책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이 계시면 무슨 걱정이겠느냐 하신다. 맞다. 그렇다. 나는 삼례에 맛난 소규모 밥집이 여럿 생겼으면 좋겠다, 삼례에 다양한 책방이 여럿 생겼으면 좋겠다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허나 한편으론 그것이 얼마나 큰 꿈인지 또 욕심인지 알고 있다. 삼례의 부동산 가격이 한 해 한 해 오른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린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직 상권이 조성되기도 전에 기대 심리에 의해 치솟는 땅값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누구에게 좋은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 땅을 가진 사람들 중 이곳이 좋은 모습으로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보다 더 높은 값에 매매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만 같아 그런 마음이 다른 마음보다 커질까 봐 불안하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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