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May 21. 2023

230519

두 번째 약침을 맞았다

230519 두 번째 약침을 맞았다


오늘 한의원에서 두 번째 약침을 맞았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주룩- 났다. 그 작디작은 침 하나 맞고 너무 아파 한동안 꿈적도 못하고 있는 내가 웃기고 짠했다. 한의사 선생님이 약침 놓을 때 젊은 사람한테 미안하지만 이런 건 나보다 훨씬 나이 있는 분들이 보통 맞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무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했다. 그러자 그럼 계속 그렇게 쓰라고 했다. 이 말 안엔 계속 그렇게 쓰고 치료받아라 혹은 더 망가져야 정신 차릴래 하는 말이 담겼다.


무리를 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 말도 일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자는 내 말도 맞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없다. 뜻을 굽혀야 하는 것은 명백하게 내 쪽이었다. 침 맞고 나오니 점심시간이었는데 1시에 다른 일정이 있었다. 밥을 먹자니 늦을 거 같아 그냥 일찍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일정 마치고 집에 오니 3시였다.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어 오이 하나를 아그작아그작 씹으며 급하게 기존 계정을 비공개 계정으로 바꿨다.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손글씨를 줄여야 했고 10년째 쓰던 손글씨 일기를 내려놓아야겠구나 싶었다.


요즘 나는 새로운 생활 루틴을 만드는 중이었다. 작년에 ‘책공방 탐사’ 마감 때까진 괜찮았는데 그 이후에 진행된 마감 노동의 스트레스로 아침이 가까워진 새벽에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예전에 나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상이라 처음엔 신기했고 나중엔 ‘나도 이렇게 살아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익숙해졌다. 열두 시 전에 잠드는 날보다 새벽 두세 시에 잠드는 날이 태반이었다.


새벽에 자도 늦게 일어나면 게으름뱅이가 된 것 같아 9시 되기 전에 일어나 9시 타임 필라테스에 갔다. 너무 늦게 잔 날이나 피로가 누적된 날은 일어나지 못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일 년에 열 번이 되지 않은 정도였다. 그리 많지 않은 수치다. 매일 같이 지각을 해 강사 선생님의 눈총을 받고 거의 매번 민망한 웃음과 함께 눈치를 보여 들어가긴 했어도 가긴 꼭 갔다.


나는 이렇게 부족해도 노력하는 내가 좋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오른손이 붓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내게 있어 어깨는 항상 무거운 존재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제부턴가 갸우뚱갸우뚱- 목 스트레칭을 할 때 뚝뚝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잠을 많이 못 잔 날은 뒷목에 전선이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오른쪽 어깨는 무언가 꼬인 듯한 느낌이 났다. 병원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바쁨을 핑계로 미뤘다. 사실 치료받으면 금방 좋아질 거라 생각했고 많이 쓰면 다시 안 좋아질 거라는 걸 알아서 더 뭉기적거린 것도 조금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어제는 열두 시까지 회의하다 너무 힘들어 백기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긴 회의는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나 나에겐 특히 더 그렇다. 쥐약이 따로 없는 듯하다. 몸이 힘든 탓에, 정신이 예민한 탓에 같이 회의하는 이들에게 나의 까칠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몸이 힘든 건 무리를 해서이고, 정신이 예민한 것은 어떤 막무가내 사람 때문인데 내가 까칠한 건 나 때문이다.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다.


사람은 약해지거나 어렵고 힘들 때 본색이 드러나는데 나의 본색은 까칠 그 자체다. 이럴 때 보면 아직 한참 멀었고 갈 길이 멀다. 사람이 덜 됐다 싶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다만 그런 내가 달갑지 않고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에 안 까칠하려 한다. 나의 까칠함을 꽁꽁 숨겨 어딨는지 찾지도 못하게 하고 아주아주 위급 상황일 때만 짠-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스스로를 원활하게 통제하며 살아가고 싶다. 물론 이건 자기 이해와 존중 그다음의 이야기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 이전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삶에서 보람을 찾고 싶었고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좋다는 것도 잘 살고 싶다는 것도, 보람도 가치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나 마음을 갖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음과 잘 사는 것, 보람,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중하다는 생각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305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