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변화가 있을까
몇 년 간 사용하던 계정을 비공개로 바꿨다. 그곳엔 앞으로 손글씨로 써오던 일기를 대신하는 일기를 쓸 요량이다. 오른손이 고장 날 기미가 보여 10년 가까이 손글씨로 써오던 일기를 서서히 줄여나가기로 한 것이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글을 쓸 때와 달리 쓱쓱 써지고, 한 번 쓰면 돌이킬 수 없는 손글씨를 무척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래서 내려놓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려놓아야 한다. 고집을 부리다가는 더 큰 것 혹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과거의 나는 무언가를 더 많이 얻고, 담고, 취하려 했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에 대한 관심이나 생각은 물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내가 원하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점점 뚜렷해지는 탓도 있고, 다 할 수 없음에 대한 한계를 배우고 있기도 하다. 삶을 살아가는 큰 방향은 바뀌지 않았으나 세부적으로는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이제 나에게 있어 ‘무작정’은 거의 없다. 그러한 탓일까. 나는 MBTI에서 완전히 치우친 P인데 내 주변에선 J라고 한다. 나에게 J의 성향이 있다는 느끼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나도 알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P가 확실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건 너무 신나지만 그러한 것들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헐벗고 살아서 이제는 옷을 좀 입고 살 생각이다. 민낯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드러내고 살았지 싶다. 나는 그게 ‘정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인지시킬 필요는 없다. 정직은 남을 속이지 않는 것보다 나를 속이지 않는 데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내가 원하는 정직은 그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