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위로를 주는 전시
230602 | 영감과 위로를 주는 전시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마음이 울렁울렁해지는 전시를 보고 돌아왔다. 사진전을 보고 이렇게 쭈뼛쭈뼛-할 정도로 좋았던 것은 성곡미술관에서 <비비안 마이어> 전시 이후 처음인 듯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집의 풍경을 담는 작가의 관점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 결과물인 사진은 물론 전시 해설도 기똥찼다. 지난 2월 말 언니와 조카랑 ‘현대미술관(과천관)’에서 ‘모던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시를 보았고, 지난 4월 경주에 있는 우양미술관에서 ‘장줄리앙’ 전시를 보았다. 그때마다 내가 전시 보는 걸 ‘참 좋아했구나’ 느꼈는데 이번에도 다시금 명확하게 느꼈다. 전시를 볼 때면 책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내 생각이나 취향에 맞으면 그래서 좋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 주면 그래서 또 좋다.
이번 전시는 내게 영감은 물론 용기를 주었다. 2021년에 ‘나의 조각모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 마음속에선 또 하나의 프로젝트의 싹이 돋았었다. 하지만 1년에 프로젝트를 연달아 두 번 진행하고 나니 기운이 쪽- 빠졌다. 또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내 것과 달랐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감하는 것은 다른 것이고 나 스스로도 충만하지 못했던 지라 동력을 잃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를 지켜야겠구나, 그게 가장 중하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히 했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저 밑에서부터 에너지가 쭈욱- 차오르는 기분이다. 2년 전부터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으나 실천하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나의 기록학교<기록탐구생활>’ 하반기 과정에 시도해 볼 생각이다. 용기가 생겼다. 역시 바닥을 치면 차고 오르는 힘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리고 또 역시 내 생각이 옳았구나, 앞으로 나를 좀 더 믿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앎인 것처럼 좋은 일의 시작은 좋은 것을 알아차림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그렇다면 생각보다 내게 재능과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전시를 보는 내내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고 또 찍고, 거금을 주고 도록도 사 왔다. 틈 날 때마다 맛있는 걸 아껴먹듯 밑줄을 그어 가며 읽고 있다. 읽고 살펴야 할 자료가 산더미가 같은데 이러고 있다.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이런 맛도 없으면 이 바쁘고 정신없고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투덜이대마왕이 되었을 텐데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