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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14. 2023

2013-1. 면접만 2시간, 책공방을 만나다

2013-1.

면접만 2시간, 책공방을 만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고, 마음의 움직임을 우리는 ‘감동’이라 부른다. 책공방에 처음 왔던 그날 나는 책공방 책장과 선생님의 꿈에 감동했다.


“글은 좀 쓰나요?”

“네, 쓰는 걸 좋아해요.”

“네, 그럼 메일로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보내주세요.”


선생님과 나의 첫 대화이자 전 화통화 내용 중 일부다. 전화를 끊고 몇 개월 전에 기간제 교사 서류를 제출할 때 써두었던 자기소개를 수정하고 이력서를 작성하여 메일을 보냈다. 며칠 후 면접을 보았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 날짜를 잡았다. 오후에는 출근을 해야 해서 오전으로 약속을 잡았다. 날이 흐려 비가 올 듯 말 듯했다. 네이버 지도에 검색을 해봐도 정확한 위치가 나오지 않았다. 변수가 생길 수 있어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바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한참을 기다리다 ‘삼례’라고 쓰인 버스가 오기에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첫날부터 자꾸만 꼬였던 삼례 가는 길


한참을 가다 보니 버스가 내가 생각했던 대로 가지 않았다. 아뿔싸- 돌아가는 버스를 탄 것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저 버스기사님께서 마구 달려주시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기사님도 내 마음을 아셨는지 속도를 내주셨고 나는 생각보다 많이 늦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은커녕 면접이라고 평소에 안 신던 구두까지 신고 있었다. 이쯤 되고 보니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것도, 돌아가는 버스를 탄 것도, 이렇게 비가 오는 것도’ 모두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정말이지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뭐 한다고 이 시골까지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더구나 매일같이 이 길을 걸어 출근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못할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럴만한 이유가 내겐 없었으니까. 그런 결론을 내렸으면 나는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고 나를 추천해 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개해주신 분의 체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가 거절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둘레둘레 하며 약속 장소를 찾아갔다.


그때 당시만 해도 간판은커녕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 허허벌판에 시커멓고 커다란 창고만 덩그러니 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비가 오고 살짝 안개도 껴서 마치 ‘무진기행’에 나오는 ‘무진’이라는 곳이 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책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멋진 책장을 마주했다. 한눈에 ‘내가 원하던 책장은 바로 이런 모습이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책장에 반하여 시간이 늦었다는 것도 있은 채 한 1분가량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문소리가 났는데 아무 소리가 없자 선생님께서 나와 보았고 비닐도 안 벗겨진 새 의자에 앉아서 냉수 한 잔을 앞에 두고 2시간이 될 줄 모르는 면접을 시작했다.

 


나는 꿈을 꾸는 사람,

선생님은 꿈을 이루는 사람


선생님께서 내게 했던 첫 질문은 자기소개서를 직접 썼냐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썼노라고 대답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제목 카피가 참 좋다고 하셨다. 내 자기소개서의 카피는 ‘꿈을 꾸는 사람, 이승희입니다’였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자기를 ‘꿈을 꾸고 이루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자기소개서에 나와 있듯 책과 함께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라 답했다. 선생님은 너무 포괄적이라면서 그건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내일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꿈이라고 할 수 없느냐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꿈을 이루는 사람이고 이곳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내려왔다고 했다.


‘빵집’의 예를 들어 당신은 빵집 주인인데 지금 빵집에 주방장도 없고, 스텝도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의 일을 다 하려니 힘이 든다고 지금의 상황을 전했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 사람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3개월째 사람을 못 뽑고 있다고 있단다. 지원한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선생님의 욕심은 글도 좀 쓸 줄 알고, 디자인도 할 줄 알고, 어린이들과 수업이 가능한 사람을 뽑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람을 뽑으니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잘할 수 있다고만 한다고 했다. 나는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알고 보니 ‘삼례’라는 지역 때문이었다. 대부분 조건을 보고 연락이 왔다가 근무지가 삼례인 것을 알고는 그 뒤로 연락이 없다고들 했다. 결론은 마땅한 사람이 없어 많이 늦어졌고 지금 사람이 급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밖에 이곳은 4대 보험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려면 다 포기해야 한단다. 그 대신 정말 즐겁고 보람이 있을 것이라 했다.



오락가락했던 마음,

믿음은 없었지만 확신은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제까지 나는 책공방도 책 만드는 것도 전혀 몰랐다고. 하지만 그래도 책과 함께하는 일이니 막연하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바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 포기하고 기회를 잡으라며 끊임없이 설득하기에 ‘일단,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당시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입에선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창피하지만”이란 말이 꽤 여러 번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지금 내 앞에 닥친 기회를 꽉 잡아야 한다고 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은 내려놓아야 한다고, 당신은 굉장히 잘 왔다는 이야기, 당신 앞에 굉장히 좋은 찬스가 왔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멋지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이렇게 나를 설득할까 싶었다. 그래서 일단 내가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니 일단 겪어보자는 마음으로 ‘해보겠다’ 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실컷 설득을 하더니 내가 수긍하자 태도를 바꿔 자신도 생각을 좀 해보겠단다. 이미 속내를 이야기하셨으면서 이건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2시간 동안 면접을 본 것도 그렇고 전주에서 이 정도 월급에 이 근무조건에 삼례까지 올 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선생님께선 글쓰기, 디자인 등 거의 만능을 원하시는데 그런 사람이 이 조건에 올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연락이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약속한 날까지 연락이 없으셨다. 내 확신이 흔들렸다. 나보다 괜찮은 사람이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전화도 아닌 문자가 왔다.


이승희 님, 꿈 이룰 준비되셨죠
함께 꿈꾸는 방향으로 힘차게 달려보시죠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 기대됩니다.
-책공방북아트센터 -


그런데 이번엔 내 마음이 변했다. 책공방이라는 공간이 좋았고 선생님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긴 했지만 그때 당시 나는 올인할 용기도,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맛을 보자 생각했다. 6월부터 출근이라는데 당장 그리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감사하다고 하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다시 또 삼례 가는 버스를 타고 책공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해서 오전에는 공방에 출근해 얼굴 도장을 찍고 점심에는 학원에 가고 주말에는 종일 근무를 하는 나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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