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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23. 2023

2013-2.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2013-2.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2013년 6월 5일, 책공방이 속해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이 문을 열었다.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맞았다. 책공방으로 출근을 시작한 지 닷새 밖에 안 된 나에게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건 이곳이 ‘책공방’이라는 것과 이곳에 있는 기계들이 과거에 책을 만들 때 사용했던 기계들이라는 것뿐이었다.


 출근한 지 닷새 만에 다시 또 마음이 붕붕붕


“여기 이름이 무엇인가요?”

“여긴 뭐 하는 곳인가요?”

“이건 뭐 하는 건가요?”

“여기가 책 박물관인가요?”

“이건 어디서 온 건가요?”

“계속 여기 있는 건가요?”

“이곳에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이 기계는 뭐 하는 건가요?”

“직접 책을 만들 수 있는 건가요?”

“아무 때나 오면 체험을 할 수 있는 건가요?”

“가죽 다이어리 만드는 데 비용은 얼마인가요?”

“이건 다 어디서 구해온 건가요?”

“이 활자로 직접 책을 만드나요?”


사람의 생김새처럼 비슷한 질문도, 독특한 질문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자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해 청소를 마치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면 선생님이 참고자료라며 주신 책을 보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 세례를 받고 보니 그렇게 책을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 때 무엇을 물어보고 필요로 하는지를 예상하고 그 질문이나 요구에 필요한 지식을 쌓았어야 했구나 싶었다. 솔직히 나는 선생님 옆에서 눈치껏 시키는 일을 하고 인사와 기록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기록’은 기본이고 관람객 응대가 내 주 업무였다. 하지만 그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붙임성도 없고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다.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 책장에 반해 뭐든 인연을 맺어보자 살짝 욕심이 났던 이 자리가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 않기 시작했다.  


 

매번 달라지는 설명에, 하루 종일 초긴장


공방에서의 일상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공방지기가 된 나는 매일매일 기계, 소품 그리고 이곳에 오신 사람들을 관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에 직원이 되었지만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한 백지상태는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면접을 보고 다시 공방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내게 그날그날의 일을 자유롭게 기록으로 남기라고 했다. 그것 말고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는 말씀은커녕 ‘무엇을 해라’라는 말조차도 없었다. 선생님은 항상 바쁘셨고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렇게 설명하면 된다’ 알려주지 않으니 나는 나 스스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설명을 하실 때마다 나 또한 관람객이 되어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필요한 것들을 메모했다. 설명을 듣다가 모르는 것이나 알고 있더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그때그때 사전이나 인터넷을 찾아보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것도 기록했다. 어떤 것은 쉽게 이해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몇 번을 찾아보고 기억해도 쉽게 내 것이 되지 않았다.

똑같은 이야기 하는 걸 싫어하는 선생님은 매번 설명을 달리했다

선생님의 설명은 그때그때 달랐다. 어떤 날은 자신의 이야기를 잔뜩 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기계에 대한 설명에 초점을 맞췄다. 항상 새로운 사람이 오는데도 그때마다 전에 했던 설명이 아닌 새로운 설명을 하시기에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것이 선생님의 말하기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항상 초긴장 상태로 모든 것을 예민하게 보고, 듣고, 느끼며, 기록해야만 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면 앵무새처럼 선생님이 했던 말을 내 말과 적당히 섞어가며 설명을 하곤 했다.


하지만 앵무새는 어디까지나 앵무새일 뿐이었다. 속은론 나보다 잘 아는 분이 오시면 어쩌지, 내가 잘못 말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스러웠다. 그 걱정은 선생님이 설명을 할 때마다 더욱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에는 나 또한 내 설명에 만족스러울 때가 한 번씩 생기기 시작했다. 오시는 분들마다 우리 공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셨고 덤으로 내게 칭찬도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이러한 칭찬들이 모여 나를 키우지 않았나 싶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좀 더 잘하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또 사람들이 책공방에 대해 좋다고 말씀해 주실 때마다 처음 품었던 작은 욕심도 무럭무럭 자라 더 깊고 자세하게 책공방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선생님이 사람을 뽑지 못했던 이유                    


책공방 이승희의 첫 기록, 개관기념 무료 워크숍을 기록하다

 #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책공방북아트센터가 삼례에서 새롭게 문을 연 날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어요. 그런데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인쇄소네’하시는데 책공방은 인쇄소가 아니랍니다. 우리 책공방은 과거의 우리 선배들이 책을 만드는 과정을 기계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고 그 방식을 이용해 세상의 하나뿐인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죠. 그리고 이 공방일지에는 앞으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담아보려 합니다.


문을 연 첫날이니 만큼 그에 걸맞게 개관식 행사가 있어 전국방방곡곡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셨어요. 개관 기념으로 무료 워크숍도 있었답니다. 오늘 무료 워크숍의 주인공은 저기 멀리 대구에서 온 만권당 청년들이었어요. 이 청년들은 우리 공방에 들어오자마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계 하나하나를 진품명품에서 물건을 감정하는 감정사처럼 세심하게 살펴보더라고요.


또 궁금한 건 어찌나 많은지 이것저것 선생님께 물어보고 답변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왜 선생님께서 이 친구들을 첫 무료 워크숍 참가자로 뽑았는지 알겠더군요. 오늘 이 친구들이 자신의 책을 만들고 그 책에 자신의 이야기도 적어 보았어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이렇게 책을 만들고 그 책을 통해 꿈을 키워나가는 그런 멋진 공간이 되길 꿈꿔 봅니다. 이 호기심 많은 청년들이 오늘 직접 만들어 간 다이어리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적힐지도 무척 궁금하네요.


막상 기록을 하려 하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선생님은 자유롭게 쓰라 하셨지만 무엇을, 어떻게 자유롭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글 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나름 글 쓰는 걸 좋아했기에 그렇게 큰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혼자 쓰는 글과 누군가 원하는 글을 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내가 쓰고 싶어서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글이야 내 마음대로 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요청한 글을 쓰는 건 그렇지가 않았다. 공방에서의 일을 써야 하는데 그날 뭐 했고 뭐 했고 뭐 했다 하는 식으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나름 글을 쓴다고 대답을 하긴 했는데 선생님께서 원하는 글이 대체 어떤 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샘플 자료라도 보여주었으면 싶은데 그냥 무조건 자유롭게 편하게 쓰란다. 나는 그 말이 일기처럼 써도 된다는 말인가 싶어서 ‘정말 솔직하게, 자유롭게 써도 되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하셨고 나는 ‘그래, 일단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신경이 아니 쓰일 수 없었다. 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면서 글을 이렇게 밖에 못쓰나 하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기록을 방해하곤 했다.


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기록에는 글쓰기만이 아닌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손님들이 오시거나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나는 사진도 찍고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의 반응에도 예민해져야 했다. 즉, 글도 쓰고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설명을 하시면 내가 모르는 내용이 없는지 귀를 기울이며 혹시라도 처음 듣는 내용이 나오면 메모를 해두어야 했고 그 와중에 선생님 설명을 하는 모습이나 설명을 듣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 했다. 한 번씩 선생님이 무언가를 가져다 달라 부탁하시면 그것도 가져다 드려야 했다. 그러다 보면 뭐든 하나 놓치기 일쑤였다.


선생님께서 ‘멀티! 멀티!’ 하신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보고 느끼는 데 집중할 것인지 기록을 남기는데 집중할 것인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것 하나 능숙하지 못하니 언감생심이다. 내 선택은 전자였다. 아직 정식 직원이 아니니 일단 이곳이 대체 무엇을 하는 곳이고 내가 만약 정식 직원이 된다면 어떤 역할들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대해 알고 배우는 기간이니 당연히 나는 보고 듣고 느끼는 데 집중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게 주어진 업무에 소홀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진 찍고 기록을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고 해도 잘 티가 안 나는 일이다. 그러니 나는 자꾸 내가 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기록을 하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러한 거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언가 해야 할 일을 찾고 또 그것을 하면서 머릿속으론 분주하게 생각을 하고 또 해야 했다. 공방에서의 하루하루는 신기하고 즐거웠지만 내가 정식 직원이 되었을 때 해내야 할 일들이 하나둘 씩 보이니 이 자리가 보통 자리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사람을 뽑지 못했는지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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