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희 Jul 15. 2023

제8장 하하호호에서 눈물 글썽하는 순간까지

<나의 기록학교> 여덟 번째 모임 후기

230711 <나의 기록학교> 여덟 번째 모임 후기

제8장 하하호호에서 눈물 글썽하는 순간까지   

  

오늘은 우리 모임의 든든한 분위기 메이커 ㄷ님이 사정이 생겨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겉으론 괜찮다고 했지만, 속으론 사람들은 얼마나 올지와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면 어쩌지 등 걱정이 됐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든든한 친구가 있다 없으니 마음이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ㄷ님을 제외한 네 사람이 모두 참석해 준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빵빵- 터져서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임 전에 다른 일로 마음이 언짢고 불편했는데 모임 후에는 마음의 체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오늘 막 엄청나게 특별한 질문이나 새로운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짧고 굵게 근황 보고를 하고 『거인의 노트』 3부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을 공유했다. ㄱ님은 대화는 한 가지 주제로 서로 다른 생각이 쌓여가는 것이라는 내용이 흥미롭다고 하며 ‘나의 기록학교’의 대화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항상 뜨뜻미지근한 감상을 내놓던 ㅇ님은 삶의 기록이 콘텐츠가 된다는 내용을 재밌게 보았다고 했고, ㅈ님은 무의식의 순환과정에 관한 내용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최근에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나로 첫 질문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일상을 되짚어 보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나 뭐가 재밌었지? 언제 웃었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친구와의 대화에서 재밌었던 일, 카톡에서 나누었던 재미난 일 등등 나누며 한바탕 웃으며 ‘그래서 그러지 않았나, 그럴 수도 있다, 나도 그렇다’ 등  각자의 에피소드에 개입해 의견을 개진했다. 두 번째 질문은 골치 아픈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 문제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각자 이야기해 보았다. ㄱ님은 오늘 스트레스받았던 이야기와 함께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왔다면서 자신은 환기와 변화를 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치유하는 마음으로 견디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판단하여 정면 돌파하거나 피하기, 단순노동으로 잠시 피신하기 등을 꼽았다.


그리고 책에서 등장했던 내용 중 하나인 내가 두려움 혹은 불안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와 그 두려움이나 불안으로 어떠한 경험이나 기억에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ㅈ님은 상대방의 진심(밑바닥)을 알게 될 때라고 했고, ㅍ님은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불안했다고 했고, ㅇ님은 배신, ㄱ님은 자기 잘못을 자기 입으로 얘기해야 하는 순간을, 나는 믿었던 것으로부터의 배신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비슷하면서 달랐는데 그 두려움과 불안 뒤에는 개개인의 경험 그러니까 삶이 담겨 있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한데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담담하게 각자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나 너무 솔직한 이야기에 당황해서 그에 대해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하고 분위기를 전환하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은 ‘버킷리스트’에 대한 질문이었다. 살면서 이거 하나쯤은 해봐야 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실천할 것은 권하는 책 내용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앞선 질문에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해 이것은 각자 세 개씩만 적어보기로 했다. 진부할 수도 있는 질문이기에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말할 수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롭게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ㅍ님은 나 홀로 제주 여행 가기를 꼽았고, ㅈ님은 까미노 산티아고랑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에 가는 것과 평생 친구 만들기를, 나는 오로라 보러 가기와 뉴욕 모마 미술관 가기랑 오스트리아에서 빈 필하모닉 공연 보기를, ㅇ님은 아-하면 어-하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 만나기를, ㄱ님도 결혼하기를 꼽았다. 연륜과 종교가 있는 ㅍ님은 ‘맞다’라며 호응했고, 나도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며’ 거들었다. 그러자 ㅈ님은 어제 친구의 SNS에서 보았던 글귀를 공유해 주었다. 할머니처럼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ㅍ님은 줄 생각은 안 하고 받을 생각만 한다고 했고 마냥 순수하지 못한 우리도 맞다며 ‘사랑을 받으려고만 한다’고 입을 모으며 한바탕 웃었다.      


오늘도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훌쩍 갔다. 계속해서 시간 체크를 하지 않았더라면 밤새도록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을 정도로 시간이 무르익었다. 지금부터가 정말 재미난 시간인데 오늘 모임의 시간도, 6-7월 과정도 끝나가고 있어 아쉬움의 파도가 밀려왔다. 요즘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달갑지 않은 상태인데 이곳에서는 또 다른 자아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채우기보다 소모하는 편인데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는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고 채워지는 기분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아마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과 비일상의 대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리액션 중 하나는 ‘오 그게 뭐예요? 처음 들어봐요!’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나는 준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웬만한 것들은 다 아는 척척박사였는데 이곳에서 나는 모르는 것투성이다.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유치원생이 따로 없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그동안의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느껴져 작아진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이를 모르지 않았으나 실감하는 것은 또 달랐다. 또 다행인 것은 이러한 상황이 낯설긴 하지만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고 신기하고 새롭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기록학교’의 최대 수혜자는 참여자가 아닌 내가 아닐까 싶다. ‘나의 기록학교’에만 가면 힘을 얻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이러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맞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그동안 이쪽에 시간을 쌓아온 만큼 참여자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아낌없이 나누고자 했다. 그런데 내가 나누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아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책공방 #이승희 #10주년 #나의기록학교 #기록탐구생활 #익산 #동네책방 #독립책방 #마음책방 #북메리카노 #익산청년 #청년모임 #독서모임 #익산독서모임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알록달록- 다양한 기록을 읽고 나눕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