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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06. 2023

2013-4. 우당탕탕은 아니지만 좌충우돌

2013-4.

우당탕탕은 아니지만 좌충우돌


2013년엔 선생님도 나도 참 막무가내로 용감했다. 특히 2013년 6-7월의 나는 가장 서툴렀지만 가장 씩씩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와 일거리에 흥미진진했으나 버거웠고, 선생님의 자잘한 주문으로 많은 일을 했지만 그 결과물이 쓰인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 따위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맨땅에 헤딩하듯 열심히 시도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모든 일은 서툴고 어색하기만 했다. 특히 책공방에서 첫 수업을 했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나고 등이 빳빳해지는 기분이고 선생님한테는 서운함과 감사함이 겹친다. 출근한 지 2주 밖에 안 된 나에게 대뜸 수업을 시킨 것도,  부족한 데도 '잘한다, 잘한다' 해주었던 것도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주말 출근, 그래도 괜찮아     


신나고 즐거운 짱짱인 일요일 하지만 난 오늘도 달린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 이게 뭐 하는 짓일까라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안 든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맛’에 한다. 바로 그 맛은 뿌듯함이다. 오늘 하루 나를 위해서 참 열심히 잘 살았다며 나를 토닥토닥해 주고픈 그런 아름다운 마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랑가 몰라. 주말이라 평소에도 많은 관람객이 더욱 많았다. 누군가가 매일같이 찾아오는 곳을 지키는 일은 조금 귀찮지만, 반면 꽤 매우 매력적인 일임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늘은 어떤 사람들이 올까? 어떤 일들이 있을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몇 있지만 역시 오늘의 메인은 스크랩북 만들기에 함께한 귀요미들이다. 열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일주일 전에 신청한 아이부터 즉석에서 참여한 아이까지. 얼굴 생김생김처럼 제각각의 아이들이 모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수업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어수선하면 어떠랴? 어수선하다고 하여 경험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수업을 하게 된다면 그만의 매력이 있듯 어수선함은 그 어수선함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잠깐 듣고 스크랩북 만들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소 힘겨워 보이던 아이들은 직접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이 되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스크랩북 만들기를 마치고 소감 발표를 들을 땐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받아쓰기한 것처럼 '너무 좋았어요. 또 오고 싶어요'라는 소감이 주를 이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흐물흐물 한껏 말랑말랑해짐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이러한 감동을 선물할 수 있는 일은 흔치 않다. 보람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내 설명해 주리. 130616          


 

첫 수업을 하고 마음이 탈탈- 털렸다      

아이들과 하는 수업이 처음도 아닌데 무척 떨었다. 아마도 아이들만 데리고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이 함께하고 오픈된 공간에서 수업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에겐 매사 어려운 일이 없다. 처음으로 내게 수업을 맡기면서 ‘그냥 하면 된다’고 했다. 며칠 전 내게 팝업북을 만들어 보라 했다. 한두 번 보긴 했지만 내가 직접 만드는 건 처음이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더듬더듬 팝업북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이번 주말 수업은 내 몫이란다.      


막막하기만 한 마음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웅다웅 자리싸움했다. 다행인 건 팝업북 만들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팝업 종이를 뜯을 때와 풀칠을 할 때 그리고 속지와 표지를 붙일 때. 이렇게 세 가지만 신경 쓰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른이기 때문이었다. 대상이 초등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오늘 수업에 참여한 친구들은 유치원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그래서 다들 보호자와 함께 왔고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자리를 지켰다. 보호자가 있어 수월한 한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 신경이 쓰였다.      


며칠 동안 틈틈이 수업 준비를 했다. 선생님이 수업할 때 보았던 것처럼 나도 선생님과 같이 공방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상이 유치원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유치원 아이들의 집중시간은 길어야 5분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책 만들기를 시작했다.      


팝업북 만들기가 워낙에 간단해 나는 수업이 일찍 끝날까 봐 처음엔 천천히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내가 걱정했어야 할 것은 수업이 일찍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늦게 끝나는 것이다. 아이들의 진행 속도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아니 혼자서 작업 가능한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오늘 참여한 친구들은 대부분 가족이 함께 신청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경우 보호자 혼자 두 아이를 감당하기가 벅차 보였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직접 종이를 접고, 풀칠을 하게끔 유도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한 친구를 봐주고 있으면 다른 쪽에 도움을 요청했고 하나를 봐주고 다른 친구에게 이동하면 그다음 작업을 위해 나를 찾았다. 또 친구들마다 속도가 다 달랐다. 어떤 친구들은 속도가 빨라서 계속해서 다음 진도를 궁금해하고 어떤 친구들은 세월아 네월아 누군가 대신해 주길 기다렸다. 단계마다 설명을 하고 실행을 하고 할 생각이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봐줘야 했고, 아이들이 아닌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게 빠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막판에는 거의 일대일 수업이 되었고 몇몇 친구들은 일찍 끝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져 내가 직접 하다시피 해서 빠른 속도로 수업을 끝냈다.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나니 너무나 허탈했다. 너무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잘했다고 했다. 이쯤 되고 보니 그동안 선생님의 ‘잘했다’가 진짜 ‘잘했다’가 아니었음이 확실해졌고 마음은 더 허탈해졌다. 130630        


       

“그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책공방 오픈 시간은 삼례문화예술촌의 다른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오전 10시다. 주말에는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는 분들도 종종 있다. 오늘은 오픈과 동시에 완주 중학교 친구들과 <가죽다이어리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가죽다이어리 수업은 원래 스무 살 이상 성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학교 친구들을 위해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선생님은 어제의 여파로 수업 전에는 다소 힘들어 보였으나 역시 프로답게 수업이 시작되자 생기를 되찾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배꼽 손 인사로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선생님의 이야기는 새로웠다. 오늘은 어제 책공방에 새로 이사 온 기계 친구들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 사연은 이러했다. 선생님이 10년 전에 오랫동안 인쇄소를 운영하던 분을 알게 되어 그 인쇄소에 있던 오래된 기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으니 넘겨 달라고 했으나 그분께서 자기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해 포기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분에게 대뜸 입금하라고 연락이 왔고 선생님은 두말없이 바로 거금을 보냈고 바로 어제 그 기계가 책공방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의 그 기억을 고스란히 다이어리에 남겼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직접 쓴 다이어리를 공개했다. 보통 다이어리라면 스케줄을 기록하고 어떤 리스트 따위만을 적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선생님은 하루하루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으라고 주문했다. 또 무언가 한 번 마음을 먹었으면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길 하며 다이어리를 쓸 때도 마찬가지로 ‘밥 먹듯, 남자친구들은 게임하듯’ 쓰라는 엄명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다이어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실수하는 친구는 기본이고 음악을 들려주는데 자는 친구, 선생님 얘기하시는 데 핸드폰 만지는 친구, 방법을 알려줘도 맘대로만 하려는 친구, 친구랑 자꾸 장난치는 친구 등등.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 친구들이 이 시간을 기억이나 할까? 하는 생각과 와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학교 수업의 연장으로 생각해 지루해하는 것일까? 염려되었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적은 소감을 보니 그렇게 수업 태도가 불량하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솔직하게 적으라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얼굴을 다시 보니 아까와는 영 다른 얼굴들이다.      

자신의 책을 손에 든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수업 후 다이어리에 꽁깃꽁깃 서툰 솜씨로 적은 글을 보니 보이는 것과 품고 있는 것이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관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봤을 때  이 친구들의 태도는 좋게 보이지 않았지만, 이 친구들이 이 시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내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구나 싶었다. 가지각색 다양했던 그들의 태도처럼 오늘 이 시간도 제각기 다른 모양의 추억으로 기억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수업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오늘 왔던 친구들이 나중에 다시 찾아와 다이어리를 다 쓰면 새것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던 선생님의 약속이 지켜진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렇게 된다면 오늘 이 시간 그리고 추억이 바래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가 빛을 발할 것이다. 더 나아가 책공방이 그저 책을 만드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이렇게 추억을 쌓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겼다. 1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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