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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ug 13. 2023

2013-5.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

2013-5.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

 

책공방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책공방이 있던 삼례문화예술촌은 개관 후  연간 3~5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주말에는 평균 300명 정도 왔고 많은 날은 500명 가까이 오는 날도 있었다. 물론 아주 적은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며 힘을 얻기도 했지만 힘을 잃은 날도 많았다. 내 주변에는 나의 MBTI 세 번째 자리가 T(사고형)인 줄 아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완전 치우친 F(감정형)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이다. 여기에 주변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스펀지 같은 경향이 있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 엄청 기분이 좋아 날아다녔다가 불편하거나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난해함을 어찌할 바 몰라하곤 했다.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건네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었다. 책공방은 이렇게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몸소 체험하게 해 주었다.



배움이 아닌 마음에서 피어나는 감동


할머니 한 분이 딸 내외와 손자, 손녀를 대동하시고 공방에 방문했다. 걷는 게 힘들어 보여 의자를 내어 드리니 막간을 이용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신다. 자신은 평생 농사만 짓느라 이런 곳은 처음이라고 하며 오늘도 요즘 농번기라 일이 너무 많아 정말 삭신이 쑤셔서 가만히 누워있고만 싶었는데 사우(위)가 하도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와보니 너무 좋다고 그리고 이 정도면 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며, 2천 원도 싸다고 했다. (당시는 개관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무료입장 기간이었고 다음 달부터 2천 원의 입장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물었고 나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답변을 해드리자 내 답변에 귀를 기울더니 이곳에 있는 것들은 다 그런 것이냐며 놀라움과 감탄을 표했다. 3분이나 되었을까.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에 나는 생각이 주렁주렁 열렸다. 여러 생각들 중 나중까지 남았던 생각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는 지식의 유무나 배움의 유무에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생 농사만 지었다는 할머니가 받은 감동은 아마도 우리 공방에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 담긴 선생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듯하다. 남들은 다 쓰레기라고 버리는 것들을 귀하다고 여기며 하나하나 먼지를 털고 소중히 모았던 시간 그리고 마음이 할머니에게 전해져 감동으로 다가서지 않았을까 싶다. 130717


 

좋은 글은 좋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무료 워크숍 제8탄 행사가 있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선착순 13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늘 참여자는 무려 스물한 그루의 꿈나무들이 모였다. 지난번과 달리 참석률 100%를 기록하여 정각 PM 3:00에 수업을 시작했다. 스무 명의 참여자에 부모님들까지 함께하니 넓은 우리 공간이 꽉 차서 북적거렸다. 수업을 마치고 각자 오늘 후기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설명을 듣느라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나중에는 재미있어졌다는 이야기와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적어준 박ㅇㅇ 친구. 이 친구는 쑥스럽다며 발표를 기어코 안 하다가 선생님께서 발표를 안 하면 만든 책을 반납하고 가라고 하자 울며 겨자 먹기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또 다른 박ㅇㅇ 친구는 마무리하자는 얘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두 장에 걸쳐서 적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자신의 돈으로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 돈으로 불우이웃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고 뿌듯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굳이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또또 창ㅇㅇ 친구는 선생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공간에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해서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두 번이나 적어 선생님과 우리 공간에 푹 빠졌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직접 책을 만들어 봐서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는 친구,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기뻤다는 친구, 책을 꽉 채우겠다는 다짐과 앞으로 책을 많이 읽겠다는 다짐을 적은 친구, 기대를 많이 하고 왔는데도 기대이상으로 좋았다는 친구, 종이를 꽂아 영원히 쓰고 싶다는 친구 등 모두들 너무 잘 써서 우열을 가리기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역시 최고는 항상 있는 법이다.

오늘의 베스트는 김ㅇㅇ 친구이다. 이 친구는 신청할 때부터 샘플을 보고 정말 예쁘다고 꼭 하고 싶다며 예쁜 마음을 보이더니 수업 중간중간에 나를 도왔다. 이 친구는 오늘의 경험을 통해 평소 관심이 없던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을 적어주었는데 내가 처음에 이곳에 오게 된 이유와도 맞아떨어져서 인지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았다. 관심이 없던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됨은 물론 나중에 책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오늘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나타나 있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기록을 보고 나는 하하 호호 웃기도 하고 내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오늘 친구들의 글이 좋았던 이유는 오늘 온 친구들이 모두 글을 잘 쓰는 친구여 서가 아니라 오늘의 경험에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학원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넣은 것도 없이 무조건 쥐어짜기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글쓰기 실력 이전에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경험의 좋은 글의 재료가 된다. 좋은 경험을 하면 글쓰기 실력이 없더라도 쓸거리가 있기에 좋은 글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한느 좋은 글의 기본적인 요건은 매끄러운 글 이전에 주제가 있는 글이ㄱㅎ 글의 주제는 바로 이야깃거리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글쓰기가 걱정이었는데 오늘은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갔다. 오늘의 이 경험을 잊지 않아야겠다.  130727



“니 쭈이 빵! (네가 최고야!)”


책공방에서 중국어 소리가 들린다. 완주군 중국어 학교 3기 친구들이 이곳에 모였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자 그 본모습이 드러났다. 선생님 이야기에 대한 리액션은 기본이고 질문에는 막힘이 없다. 수업 태도가 정말 최고다. 보통 책 만들기 전에 이루어지는 선생님의 설명은 솔직히 많은 친구들이 조금 지루해하는 편이다. 열 명 중에 두세 명 정도만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선생님은 그 두세 명만 잘 들어도 성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거꾸로다. 스무 명 중 한두 명만 제외하고 나머지 서른여섯 개의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런 친구들을 보며 선생님도 신이 나셨는지 보물 창고에서 자꾸 뭘 꺼내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했다. 그 덕분에 수업은 조금 길어졌지만 누구 하나 지루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니 정말 신나 하고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커나갈 꿈나무에게 좋은 거름을 듬뿍 준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준 거름을 나무가 잘 흡수하는 것을 보는 선생님의 마음도 엄청 뿌듯할 듯하다. 이번 주는 선생님 에너지 충전 주간인가 보다. 내일 팝업북 수업에는 어떤 친구들이 올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130809



내가 만든 책, 첫 페이지에는 내 얼굴을

“Teacher! Teacher!”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부른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닌 ‘Teacher!’라 부른다. 오늘 책공방의 주인공들이 영어 유치원 꼬마 친구들이다. 오늘 이 귀염둥이 친구들과 ‘미니북 만들기 체험’을 진행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책 표지가 될 가죽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랬더니 가죽을 조물조물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본다. 냄새가 고약했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선생님과 함께‘책 만드는 버스’ 동화책도 재미나게 읽어보았다.


책 만드는 기계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공방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자신의 책, 첫 장에는  책의 주인인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정성을 다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역시 정성을 들인 만큼 그 에 걸맞게 멋진 결과물이 나왔다. 오늘 하루도 책공방에서는 이렇게 꿈나무 친구들의 소중한 추억이 한 겹 쌓여가고 있다. 130828


 



“공짜라고 너무하시네요!”

 

개관 기념으로 무료 워크숍을 진행했다. 재료비도 안 받고 전액 무료, 한 마디로 누구나 좋아하는 공짜다. 그래서 그랬는지 신청자들이 정말 줄을 섰다. 계획은 한 회당 선착순으로 딱 열 명만 받을 계획이었으나 너무나 간절히 원하시는 분들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자꾸 받다 보니 열다섯 명을 넘어 버렸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열다섯 명까지만 받기로 했는데 그래도 자꾸 요청을 해서 대기자 명단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당일이 되었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혹시나 오고 계실까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거나 통화가 된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깜박했다고 했다. 조금 화가 났다. 아니 많이 화가 났다. 정확히는 서운하고 실망스러웠다. 인원이 다 차서 아쉽지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고 빈자리가 생기면 꼭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던 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도 나도 뿔이 났다. 130616

  

 

블로거가 무슨 특권이라고


“입장료를 내야 해요?”

“네, 완주군민이면 무료인데. 혹시 완주군민이신가요?”

“나 여기 선전해 주러 왔는데 입장료를 내야 해요?”


군인이시란다. 블로거란다. 예전에 완주에서 군인으로 있었단다. 지금은 전주에 거처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자신은 블로거니까 즉, 이곳을 선전해 주러 온 사람이니 무료 관람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양해를 구했어야 맞지 않을까? 근데 이 분은 뭔가 이상하다. 이 분을 통해서 홍보가 얼마나 될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블로그를 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블로거가 무슨 특권이라고. 내가 아직 SNS 위력에 둔감한 사람이라 그런 건지 나는 오늘 온 이 아저씨가 참 맘에 안 든다. 내가 생각하는 블로거란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그것이 무슨 특권인 냥 혜택을 받으려 하고 있다. 130821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유료 입장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하지만 돈을 내야 한다는 말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 없는 사람이 너무 싫다. 매너 없는 사람도 싫다. 나이를 많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안하무인격으로 들이대는 것만 꼴불견인 줄 알았는데 젊은 사람이 그런 걸 보니 더 꼴불견이다. “입장료가 2천 원이에요? 그럼 여기서 잠깐만 보고 갈게요.” 하면서 한 발짝 들어와서는 사진을 찍는다. (뭐 하자는 건지) 표정관리가 안 된다. 이 사람 눈엔 우리 공간이 어떻게 보일까 참으로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세상에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있지만 내 눈앞에서 마주하니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나 또한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떠한 공간에 갔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매너인 줄을 몰랐다. 문화 공간에 많이 다녀본 경험도 없을뿐더러 누군가가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을 하다 보니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많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나는 진상이 될 수도 있고 매너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와 멋지다’하시며 눈이 휘둥그레지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돈 내요? 입장료 있어요? 이게 다예요?’ 하시면 깜짝 놀라는 분들이 있다. ‘우와 이게 활자예요? 참 신기하네요,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요?’ 하고 공방에 호기심을 보이시는가 하면 내게 ‘76년 소니’보다 나이가 많은 적은 지를 묻는 분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겉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무척 신경을 쓰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에 따라 자신의 품격이 드러난다는 것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이곳에 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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