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공방의 입장료를 두고 100만 원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했던 라디오 PD님만큼 ‘삼례’의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는 기억이 있다. 책공방에서의 많은 시간들이 그러하지만 그래도 손에 꼽히는 기억, 날짜는 물론 그날의 장면 하나하나가 또렷한 시간이 있다. <삼례, 책공방>처럼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카페 ‘빈센트 반 고흐’에서 선생님이 강연을 했던 날과 2천 원의 입장료를 받기 시작한 첫날 방문했던 라디오 PD님과의 만남이 그러하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빈센트 반 고흐’에서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다. 선생님이 ‘삼례, 책공방’에 내려와 우리 공방이 아닌 곳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도, 책 만들기 수업이 아닌 강연만을 하는 것도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선생님왈 책공방 패밀리 1호의 요청이라 거절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라 기분 좋게 승낙했다고 한다. 우리 공방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니 대충 하실 법도 한데 선생님은 오늘 만날 청년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고 싶다며 아침부터 분주하다. 알맞은 속지와 표지 가죽을 고르고 활자도 한 자 한 자 골라 가죽 표지에 'vincent ★책공방'이라고 제목을 새겼다. 첫 만남을 기념해 가벼운 선물을 할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핸드메이드 수첩까지 선물로 주어야 할까 의아했다.
지하 공간에 위치한 ‘빈센트’에는 열 명 조금 넘는 인원이 모였다. 선생님이 던진 첫 질문은 ‘행복하세요?’였다. 그러면서 행복해야 한다고 인생이 즐겁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그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몰입을 함으로써 주어진다고 했다. 그러니 제대로 한번 몰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에 몰입을 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니, 그냥 몰입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주제를 갖는 것이 중요하고, 남들이 다 하는 주제가 아닌 남들이 하지 않는 자신만의 분야에 도전을 권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주제를 가져보자!’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도 젊었을 적엔 꿈도 없고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직장을 다니고 신문을 보면서 세상을 눈을 떴다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세상에 눈을 뜨고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우물만을 들여다보고 산다. 그것이 좋다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 자신만의 삶을 원한다면 그럼 안 된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제를 잡고, 그 주제를 잡은 후에는 멘토를 찾아야 한다. 이때의 멘토는 친구나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전문가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근심 걱정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는 사람은 친구나 지인, 가족과 같은 비전문가다. 자신의 삶에서 주제를 하나 정했다면 비전문가가 아닌 전문가를 찾아 그 밑에서 한 1년 정도는 가까이 지내며 수련을 하고 그 길을 갈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남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 삶을 살 수 있다. 누구나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구 이야기, 드라마 이야기 같은 남의 이야기만 한다.”
또 이제는 한 가지의 직업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시대는 갔다는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는 최소 5가지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고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며 이런 직업도 있고 이런 것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자신이 꾸고 있는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내게 자신은 꿈을 이루는 사람이라고만 했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아서 선생님의 꿈에 대해서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책공방 패밀리’를 데리고 세계 여행을 가는 것과 게스트 하우스를 하는 것 그리고 각 지역별로 책공방을 만들고 여러 곳 중 한 곳은 예술전문 도서관과 함께하는 책공방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는 꿈이었다.
마지막으로 준비해 온 선물이 꺼냈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신문지에 둘둘 감아 온 선물을 선보이며 ‘기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 하게 될 기록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기록을 하라. 쓰는 자, 기록하는 자 그대로 이루어진다. 매일 쓰고, 매일 보고, 매일 묵상해라.” 선생님은 젊은 친구들에게 자신과 같은 이러한 직업도 있을 수 있다며 예술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하며 앞으로 이 지역에서 형편 되는 대로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이 이 지역을 떠나더라도 자신과 결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남아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나를 ‘1호 제자’로 소개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던 나는 얼떨결에 일어나 인사를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신이 났다. 앞으로 내 삶이 흥미진진해질 것 같은 강렬한 기분을 느꼈다. 학원에서 학생들과 만나며 나의 한계를 느꼈던 나는 배움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는데 ‘내가 정말 잘 찾아왔구나’ 싶었다. 나도 선생님처럼 저렇게 다양한 꿈을 꾸고, 꾸는 것만이 아니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면접 때 약간 사기꾼 같은 느낌이 사라지고 이제야 선생님의 본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130731
개관 후 두 달간의 무료 관람 기간을 마치고 오늘부터 유료화에 들어간다. 방문객들이 혼란스럽지 않게 선생님과 나는 안내문을 한 장씩 써서 입구에 붙였다. 지난 두 달간 무료로 입장한 터라 오시는 분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으나 설명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입장료를 받는다는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은 조금 힘이 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왜 돈을 받느냐, 그만한 값어치가 있느냐 등의 반응이었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 할 수 없이 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렇게 지쳐가고 있을 무렵, 포스가 남다른 어느 중년 분께서 유료 입장이라는 이야기에 “그래,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라며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이 처음이라 좋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낯선 반응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의 놀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목소리가 좋고 발음이 정확해서 말이 귀에 딱딱 꽂혔다. 발음이 얼마나 정확한 지 아나운서 저리 가라였다. 또 공방에 들어오자마자 ‘이거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을 하더니 그다음부턴 쉴 새 없이 질문공세를 퍼붓는 바람에 선생님에게 SOS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선생님과 이 분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두 분의 대화를 옆에서 들으니 역시는 역시였다. 이 분의 정체는 다름 아닌 ‘라디오 방송 PD님’이었다. 온전히 소리로만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하는 라디오의 특성상 발음은 생명과도 같지 않을까 싶다. 일전에 중앙일보 기자님이 오셨을 때도 역시 매체에 있는 사람들은 포스가 남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에 더욱 힘을 싣게 됐다. 특히 이 분 같은 경우 굳이 명함을 보지 않아도 ‘아 이 사람이 일반인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이런 분이 바로 ‘고수’라고 하며 눈빛이 살아있지 않느냐 했다. 두 분은 무슨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첫눈에 반한 남녀처럼 신이 나서는 침까지 튀겨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생판 모르는 남인 두 사람이 저렇게 연결될 수 있는 힘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다. 두 분이 그렇게 신이 난 이유는 보는 눈이 같아서가 아닐까 싶다. PD님은 자신도 선생님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 공간에 오셔서 그리 칭찬을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또한 입장료 2천 원에 그만한 값어치가 있느냐 묻는 사람들만 만나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니 신이 났을 것이다. 대화가 끊김 없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 이야기를 듣는 제 3자인 나 또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PD님은 이런 공간을 꿈꿔왔는데 이렇게 자신의 눈앞에 있으니 살짝 질투가 나면서도 너무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을 것이고 선생님은 자신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을 보고 상대방 또한 이런 꿈을 꾸고 있다며 가치를 알아봐 주니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아마 이 두 분이 젊은 남녀 사이였다면 첫눈에 반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사람들은 보는 데 1분도 안 걸리는 우리 공방을 한 시간 가까이 돌아본 PD님은 지금 약속 때문에 가보아야 한다며 이따 또 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땐 그냥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정말 오후에 또 와서는 선생님과 한참이나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두 분의 이야기는 또다시 시작됐다. 선생님은 신이 나서 정말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보여주는 보물들을 거침없이 꺼내 놓았다. 그리고 PD님은 선생님이 무언가를 보여줄 때마다 ‘역시나’하는 반응이 바로바로 나왔다. PD님은 ‘느낌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인데 여기 딱 들어오는데 느낌이 무척 좋았다’부터 시작해 ‘선생님의 남모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람들이 일본을 욕하지만 그들에게 배울 점 또한 많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당신이 하고 있다’ 등 한참을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이번엔 선생님의 약속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늘 처음 만난 두 분은 밤이 새도 모자랄 것처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도 아쉬워서 다음에 꼭 만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자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선생님과 PD님과의 대화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면 365일 내내 이어질 것만 같았다. PD님은 가시면서 입장료 2천 원을 냈지만 나는 오늘 100만 원 그 이상을 보고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많은 것이 다르지만 선생님과 겹치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분이었다. 서로 통한다는 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묘한 성질을 갖고 있다. 선생님도 오늘 PD님을 만나 100만 원 그 이상의 힘을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오늘 PD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은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항상 출근하는 이곳이, 어떤 사람은 고물이라고 하는 이 기계들이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정말 선생님 말씀처럼 귀하디귀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책공방에 왔을 때 느낌이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이것들이 귀하디귀한 물건이고, 어떤 것들은 물질적 가치로도 꽤나 높은 것들도 있다고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였다. 오늘 그분처럼 100만 원어치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PD님을 보면서 내가 이곳에 있는 다양한 기계과 물건들 그리고 여러 가지 것들의 어울림을 보는 눈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무엇을 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말하는가’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PD님은 하는 이야기마다 정말 맞는 말만 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이다.) 그런데 그렇게 옳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쭈뼛쭈뼛하며 이야기한다면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그 이야기의 영향력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듯 옳은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이야기에 맞는 표정과 말투 등 그 이야기에 걸맞은 옷을 입혀줘야 한다. 선생님이 요즘 내게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이야기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내가 바른 이야기를 해도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 전달력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이야기의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과 같다. 이래저래 여러모로 배운 것이 많은 하루였다. PD님이 100만 원 그 이상의 가치를 보고 간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오늘 100만 원 그 이상의 배움을 얻은 것만 같다. 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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