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6 <나의 기록학교> 열네 번째 모임 후기
230826 <나의 기록학교> 열네 번째 모임 후기
제14장 쿠키와 연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
한때 ‘책은 혼자 읽는 건데 독서모임은 무슨 독서모임이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과 함께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함께 읽는 힘’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책을 읽고 나누는 일이 참으로 귀하다. 그렇다고 우리 모임에서 뭐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 자신의 생각을 내어 놓고, 털어놓고, 떠올리고, 끄집어내어 나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다.
내 이야기에 상대방이 집중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나 또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어쩌면 당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모임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첨예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첨예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관계 중에는 묻지도 따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생각하고 차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8-9월 모임도 벌써 네 번째다. 서로가 조금씩 가까워져서 인지 오늘 모임은 나눔의 현장이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쿠키를 나누고, 똑같은 책이 두 권 생겨 나누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사 온 연필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요일 오전 10시는 결코 쉽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도 뿌듯했는데 이렇게 나눔이 오가는 현장을 마주하니 뿌듯함이 배가 됐다.
S님의 제안으로 오늘은 향기 혹은 냄새를 통해 근황토크를 나누었다. 근황토크의 방식을 항상 내가 제안하는 것 같아 오늘은 제안을 받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제안이 들어왔다. 각자의 일상을 돌아보고 간단한 메모 후에 이야기를 진행했다. 지난 기록을 곱씹고, 오늘 함께할 책 소감과 인상 깊은 내용을 나누고, 각자 책을 읽는 동안 함께 나눌 만한 질문들을 추려 봤다. 여러 질문 중 일기를 쓰고 싶은 순간과 나만의 책 습관, ‘안다’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기를 주제로 한 시간이었는데 일기보다는 책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한 면이 있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래도 되는 일이다. 다음 시간에 일기와 기록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해 보면 되는 일이다. 다음 시간에도 그렇지 못해도 좋다. 우리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그 사유가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다.
우리가 MBTI 같은 테스트를 하고 나의 성향을 인지하기 위한 다양한 검사나 활동을 하는 이유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향을 인지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슨 성향이라서 그래’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향을 그저 하나의 특성으로 인지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삶의 방법?!을 찾아 덜 스트레스받고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렇게 같고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서로를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면 베스트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기록은 ‘자신만의 대화’인데 그 과정에서 기록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나를 인지하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나를 이해하고 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자잘한 상처나 감정은 기록의 과정에서 치유되기도 한다. 기록의 본질은 어쨌든 내 안팎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선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이 투영되기 마련이고 자기 자신이나 남을 속이려 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기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