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9일은 내 생애 잊지 못하는 날 중 하나다. 책공방에 들어왔던 첫해였고, 삼례 책공방에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책공방 북쇼’라는 이름의 문화 행사를 진행했고 마침 내 생일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생일 축하를 받았다. 책공방 1년 차였던 2013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어서 6개월이 1년처럼 여겨졌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가수 정엽 님이 찾아오기도 했고, 먼지 쌓인 의자 닦기부터 시작해 먼지 폴폴- 활자 정리와 까칠까칠- 의자 사포질은 물론 120명과 함께 했던 티셔츠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시시때때로 진행된 책만들기 수업과 더불어 매주 토요일 주말 워크숍을 진행했고, 빈센트 강연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제1회 ‘책공방북쇼’를 열기도 했고, 12월엔 우석대 친구들과 ‘북아트크리에이터 양성과정’을 진행하기도 했다. 책이 좋아 국어 선생님을 꿈꾸던 나는 책공방을 만나 수습에서 인턴이 되고 인턴에서 정직원이 되었다. 더불어 나는 먼지 폴폴-나고 땟국물 줄줄- 흐르는 물건들을 쓸고 닦으며 오래된 것 그리고 아날로그의 매력 서서히 물들어 갔다.
시간이 정말! 너무! 빨리! 간다.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출근 준비를 한 후 간단히 요기하고 집을 나선다.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게 되는 날엔 빈속으로 출근을 한다. 버스에 올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거나 용케 자리가 나면 앉아서 책을 보려고 폼을 잡지만 페이지가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공방에서는 집에서 보다 시간이 더 잘 간다. 2배속으로 가는 것 같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씻고 일지를 쓰기 시작한다. 봐야 할 책도 있고 보고 싶은 책도 있고 청소와 빨래도 해야 하는데 글쓰기 실력은 영 늘지 않는다. 그럴 거면 빨리라도 쓰면 좋으련만. 빨리 쓰지도 못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짜증과 졸음이 밀려와 잠이 든다. 이게 요즘 내 일상이다. 예전 같았으면 끔찍하게 여겼을 이 일상을 나는 용케 잘 견디고는 있다. 130810
익숙하지 않은 말투다. 어디서 오셨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구에서 오셨단다. 선생님은 반가워하며 책공방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기계를 친구 소개하듯 소개한다. 나는 그제야 ‘아 맞다. 이 기계들이 대구에서 만들어졌다고 했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에 들어왔을 땐 시큰둥하던 그분은 그제야 안경을 고쳐 쓰고 관심을 갖는다. 역시 사람이든 기계든 같은 지역 출신이면 반가운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대구에서 만들어진 기계는 40년을 거쳐서 이곳에 오게 되었고, 대구에서 태어나 자란 이 분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이 아닌 전라도 삼례에서 만나게 되었다. 대구가 고향인 이 기계는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모습으로 보았을 때 그리 귀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그것도 모자라 고물이 되어 없어질 뻔했던 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용케 선생님을 만나 위기를 넘어 기회를 얻게 되었을 텐데 오늘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온 손님이 온 걸 안다면 매우 기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130806
책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책에는 농협 마크가 찍힌다. 어떤 분들은 무슨 농협 마크를 찍느냐며 촌스럽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신기하고 재밌어하기도 하며 반응이 제각각이다. 어쨌든 무수히 많은 무늬 중에 왜 하필 농협 마크였을까?
먼저 농협 활자가 선생님의 손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이러하다. 선생님은 20년 전부터 이러저러한 책 만드는 기계 그리고 과거에 책을 만들 때 사용하던 활자 또 옛날 책들을 꾸준히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어느 장인 선생님께 활자를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고 활자를 받아왔다. 그 장인 선생님께서 ‘내가 뭐 줄 건 없고 이거 정말 귀한 것이니 잘 간직하라’라며 무언가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손에 꼭 쥐여 주시더란다. 그래서 선생님은 내심 정말 귀한 것이 아닐까? 무엇일까? 하며 기대하고 돌아오자마자 신문지 뭉치를 풀어 보았는데. 신문지 안에는 농협 마크를 찍을 수 있는 활자가 있어 당시엔 실망했다고 했다. 물론 활자를 쓰던 당시, 이 농협 활자는 일반적인 제작이 아닌 특수 제작된 것이라 흔치 않은 것은 맞지만 선생님의 기대를 채우기엔 조금 모자랐던 듯하다.
어쨌든 선생님은 그래도 나중에 뭔가 쓸모가 있겠지 싶어 버리지 않고 잘 보관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무슨 인연인지 책공방은 이곳 삼례에 내려오게 되었고 앞으로 책공방에서 만들어지는 ‘책 표지에 무엇을 찍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몇 년 전에 받았던 농협 마크가 생각나셨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쌀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양곡창고는 해방 이후에는 농협 창고가 되었고 지금은 책을 만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러한 히스토리를 가진 공간에서 만들어진 책이니만큼 그 히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이 농협 마크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이 농협 마크는 이 공간의 히스토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농협 마크가 찍힌 이 책을 보고 농협 직원이냐고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 올 것이다. 그럴 때 이러한 히스토리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무늬라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보다는 귀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또한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130700
선생님은 어딜 가나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다. 오늘도 고창으로 출강을 나가셨다가 차에 무언가를 한가득 싣고 왔다. 보아하니 예전에 학교에서 쓰던 의자인데 먼지며 녹이며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때 구정물이 좔좔 흘렀다. 걸레로 의자 바닥으로 닦았더니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냈다. 밑에 녹이 슨 부분은 철이라 물걸레질을 해봐야 소용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은 기름걸레질을 한 번 쏴-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오늘 나의 미션은 의자 닦기다.
선생님은 먼지가 나니 밖에서 닦아라, 눈이 부시지 않게 해를 등지고 닦아라 등 세세하게 신경 써 주었지만 나는 뭔가 ‘밖에 나가 손들고 있어’ 하고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어릴 때도 그랬듯 선생님이 손들고 있으라고 하면 손을 들고 있을 수밖에. 선생님은 자꾸 이것도 다 수련의 과정이니 내 본분이니 했지만 난 그냥 벌 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왜 의자에 먼지를 닦아야 할까 생각하며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처음에는 힘만 들고 깨끗해지는 것 같지도 않아 짜증이 났다. 그런데 좀 하다 보니 조금씩 녹도 벗겨지고 기름칠을 하니 반짝반짝하는 게 뭔가 뿌듯했다. 그리고 누군가 이 의자에 앉게 될 때 선생님이 그랬듯 ‘이 의자가 말이야’하고 이야기해 줄 히스토리가 생겼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반질반질 제 모습을 찾은 의자가 날 보며 고맙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의자에게 내가 좋은 일을 해준 것 같아 그게 가장 좋았다. “의자야 우리 공방에 온 걸 축하해. 그동안 학교 창고에 처박혀 고물 취급을 당하며 외롭게 있었겠지만 앞으로는 예전처럼 귀여운 꼬마 친구들과 함께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해 줄게. 그리고 보았겠지만 이곳엔 너와 같은 친구들이 많단다. 이 친구들과 오래오래 함께하자꾸나!” 선생님은 의자가 어쩜 이렇게 예쁘냐며 칭찬을 하셨다. 의자를 닦으며 맘껏 교감한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의자와 나만의 이야기가 말을 해버리면 날아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131024
삼례문화예술촌은 오후 여섯 시에 문을 닫는다. 그러나 오늘 책공방은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혔다. 모두 깜깜해져 버렸는데 홀로 불을 밝힌 책공방이 마치 바닷가의 등대처럼 보였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빈센트 강연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책공방 북쇼’를 진행하게 되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과 즐거운 공연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사비를 털어 서울에서 공연팀도 섭외했다. 지역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낯선 것에 대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책공방 북쇼’를 주기적으로 열어 서로 얼굴을 보고 문화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들 좋다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종종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선생님의 바람대로 책공방이 우리 지역에서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말하는 문화 중심지가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책공방 북쇼’를 치르고 나니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문화 중심지 무엇인지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힘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획팀이 꾸려지고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언니와 오빠들의 마음이 상하진 않을까, 무언가 실수를 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달고 살았다. 책공방에서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내가 무언가 주체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너무 부족하기만 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살갑게 초대하는 것이라도 잘했으면 싶은데 정말이지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다.
책공방 일은 일대로 바쁘고 그 와중에 퇴근해서 ‘책공방 북쇼’ 관련 회의도 해야 하니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것은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기록을 하고 선생님에게 확인받고 그 와중에 북쇼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매일매일 노심초사였다. 그런데 내 걱정과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주었고 반응이 좋았다. 지난번 강연 때 선물한 메모북을 모두 채워오기로 했으나 선생님의 말대로 약속을 지킨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이야기를, 책공방의 의미를 알아주는 것 같은 기분,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131019
선생님과 처음으로 통화를 하면서 선생님은 내게 기본적인 사항을 몇 가지 물어보시고 글을 좀 쓰냐고 물었다. 나는 어떤 글을 말씀하시는 거냐고 되물었고 선생님은 공문을 보낼 때 좀 남달랐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난 쓰는 걸 좋아하고 어느 정도는 쓴다고 답했다. 그래서 난 내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이 ‘글쓰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공방에서 내 일과를 돌이켜보면 글쓰기에 치중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청소부터 시작해 이러저러한 단순노동 그리고 체험 수업 진행이 주를 이룬다. 그도 모자라 선생님은 기획자가 뭔지도 모르는 내게 자꾸 기획자가 돼라 했다.
기획은 ‘일을 꾀하며 계획함’이라는 뜻을 지녔다. 즉 기획자라 함은 일을 꾸민다는 뜻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말썽부리기 대장이었다. 무엇을 하고 놀 것인지를 궁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 또한 기획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획자는 정말 재미나는 일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기획은 굉장히 재미나는 일이다. ‘무엇을 하고 놀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무슨 일을 꾸밀까?’를 고민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그런데 책공방의 기획자는 단순한 기획이 아닌 책공방과 관련된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우리 책공방에서 해야 할 일들을 기획해야 한다. 그러려면 책공방이 선생님처럼 내 것 같이 느껴져야 한다. 그리고 뭐든 거침없이 휙휙- 해내야 하는데 나는 소심하고 예민하며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곳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닌 적극적으로 활달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주체적으로 일을 꾸미기보다 어떠한 일이 차질 없이 잘 진행되도록 준비하고 뒤에서 지켜보는 걸 즐긴다. 그런 내게 선생님은 자꾸 변하라 하신다. 신기하기만 했던 공방 생활이 점점 힘이 든다. 131218
#책공방 #삼례의기록 #책공방이승희 #기록 #이승희 #1년차 #과거 #정엽 #책공방북쇼 #주말 #워크숍 #우석대 #북아트 #크리에이터 #기획자 #아날로그 #천둥벌거숭이 #공방지기 #업무일지 #성장기 #기록 #다시볼수없는 #추억 #삼례책공방 #벌써 #10년 #과거 #추억상자 #공방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