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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Apr 21. 2020

02. 갈 길이 멀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 나가오카 겐메이 / 안그라픽스


'나가오카 겐메이'라는 디자이너가 D&DEPARTMENT 매장을 만들고 꾸려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002. 갈 길이 멀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 / 안그라픽스



150212 빨간 책을 읽었다. 겉모습도 내용도 빨간 책이다. 일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며 나에게도 그 열정을 전해 주는 책이었다.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이너'라는 제목도 뭔가 도발적인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싶다. 내가 책을 읽고 좋은 책이라 느끼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생각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경우다. 그런데 이번 책은 그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는 책이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는 습관이 있다. 그런 습관으로 인해 하루나 이틀이면 읽을 책을 일주일 가까이 걸려 읽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 책도 그랬다. 이 책은 '나가오카 겐메이'라는 디자이너가 D&DEPARTMENT 매장을 만들고 꾸려나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하루하루 그날그날의 일상을 담은 일기이다. 챕터가 길지 않고 내용이 어렵지 않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일기에 불과한 이 책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된 이유는 이 책에는 그의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철학에, 이 책에 빠져들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너무도 많아 어떤 챕터는 거의 통째로 옮겨 적기도 했다.


특히 읽으면서 반짝하며 내 머릿속에 들어왔던 내용은 하나하나의 행동에 '나 다 운가?'라는 질문을 적용해보라는 것이었다. 행동 하나와 같은 작은 것들이 모여서 뭔가 딱히 꼬집어 낼 수 없지만 명확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결정 장애가 있는 나에게 매우 유용한 팁이었다. 내가 예전에 글에서 그랬듯 사람도 응집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어 콕 박혔다. 또 한 가지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숍을 하고 싶다거나 사소한 쇼핑에도 개인적인 의미 외에 사회적인 의미가 담겨있고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쇼핑이라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부터 나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내가 자주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선순환'이다. 며칠 전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시장에 가서 애호박을 샀다. 호박 값이 올라 이천 원이라고 했다. 비쌌지만 그냥 사 왔다. 그리고 엊그제 마트에 갔는데 애호박이 천오백 원이었다. 시장의 것보다 크기도 크고 신선했다. 그냥 쉽게 생각했을 때 마트에서 사는 게 나에게 더 이익이므로 앞으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고 시장은 사라지게 될 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예전에 벙커 특강에서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이라는 주제로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하고 꼼꼼히 따져야 하며 손해도 좀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사소하게 커피 한 잔, 밥 한 끼 먹을 때도 내가 쓴 돈이 전쟁을 위해 쓰이는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는지 어떻게 이용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것이 습관이 되고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그러한 시간이 축적이 되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될 거라고. 그러나 돈을 조금 버는 사람일수록 가격이 선택의 기준이 되고 저렴한 가격에 좋은 것을 내놓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을 해야 하고 그럼 대기업이 유리하고 그럼 또 대기업이 돈을 벌고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스타벅스에 가지 말자고 스타벅스는 수익금의 일부가 전쟁 후원금으로 쓰인다고 아무리 말해도 스타벅스는 대박이 나고 삼성이 어쩌고 어쩐다고 해도 가전제품 살 때 삼성 아니면 엘지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살 때 기업이나 오너의 사회 공헌도 혹은 자본의 흐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일 그리고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또 내 일기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게 의미 있게 다가설 수 있을까?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감히 꿈꿔 본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희생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뜨겁지 않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요즘 나는 책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할 정도로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책을 쓰고, 책에 대해 생각하고 책에 대해 말하고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책책책! 정말 책에 파묻혀 살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어렵긴 하지만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종종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울 엄마는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돈도 조금밖에 못 받고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많이 오냐고. 망하지는 않겠느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엄마한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드려야겠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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