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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y 03. 2020

09. 그에게 반하다

특집 한창기/ 강운구 / 창비


09. 그에게 반하다

특집 한창기/ 강운구 / 창비


150804 어제, 요즘 신나게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었다. 이삼 일이면 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흔한 핑계인 시간이 없어서가 하나이고 또 하나는 허투루 넘길 부분이 하나도 없어 집중을 해서 읽다 보니 그리 되었다. 하지만 내 평소에 읽던 습관대로 마음에 들어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옮겨 적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한창기'라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창기'라는 사람을 만났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그의 기록을 모아 묶어 놓은 책이 아니라 그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모습을 유추하게끔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그를 떠올리며 쓴 글을 통해 난 그의 정신을, 모습을 상상하고 만났다. 한마디로 그는 참 멋졌다. 아마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사람 중에 가장 멋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실제로 만나지 못해서 일 수도 있겠다. 아마 실제로 만났다면,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아마 나는 그의 골수팬이 되어 졸졸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모두가 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떠한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이런 점은 서운했다거나 하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인정하는 듯했다. 이러든 저러든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가 뛰어나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했다. 그는 정말 까탈스럽고 유난스러웠다고 한다. 그 대목을 보며 무언가 자신이 원하는 바가 확고하다면 무던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 점점 까칠해지고 예민해지는 나에게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색이 완전 샛노란 색이 분명하다면 흐리멍덩한 노란색이어도 좋을 리가 없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색이 그냥 노란색이라고만 정해놓은 사람에게는 샛노란 색이든 개나리 색이든 유채꽃 색이든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무던하다고 사람 좋다고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특성인 것이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 특성.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무의식중에 무던한 것이 옳은 냥 교육받지 않았나 싶다.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까탈스럽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다.


지난 화요일에는 딱 그랬다. 내가 대학교 때 싫어하던 딱 그 아이의 행동을 내가 취하고 있었다. 남들은 그냥 다 넘어가는데 나 혼자 질문하고 이야기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일이 지난 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류의 사람이 하는 것을 내가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 왜 난 그냥 넘어가지 못했을까' 한참을 곱씹었다. 그리고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냥 내 생각과 달라도 그 사람이 분명 잘못됐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냥 넘겼다면 좋았을까 생각했다.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건 더욱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결론은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듯 내가 원치 않던 모습이 되기도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그 날 질문을 안 했다면 나는 계속해서 그를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통해 그의 의도를 알았고 그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괜찮은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잘한 일이었다. 


나도 사람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 꿈을 가지라고 말할 거면서 왜 자신을 꿈을 갖지 않는가.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자신은 별로 관심 없는 설명을 아이에게는 들려주고 싶어 하는 부모를 종종 만난다. 그런 경우 대부분 아이들 또한 부모와 판박이다. 부모가 호기심을 가지고 경청을 하는 경우 아이들도 부모와 같이 눈을 반짝이며 듣는다. 아이에게 바라는 삶을 자신이 먼저 살아야 한다.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아이라도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거나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한창기' 같은 이가 절실하다. 너도 나도 전문가라고 하지만 실상 만나보면 진짜 고수는 드물다. 내가 생각하는 고수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성공한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나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만의 정체성이 명확하고 자기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나는 고수가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창기'가 정말 대단한 이유는 또 다른 고수들을 양성했다는 점이다. 좋은 인재를 뽑아서 일 수도 있지만 그와 관계를 맺었던 이들 대부분은 이제 고수가 되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진짜 고수라 생각한다. 만난 적도 없는 그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이번에 내가 읽은 '특집! 한창기'라는 책은 지형과 닮았다. 그리고 나의 소명은 이 지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형을 통해 식자판을 대신할 인쇄판을 만들 듯 나는 내가 경험하는 것들을 기록하고 그런 나의 기록으로 나의 경험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만난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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