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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n 12. 2020

23.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나도 책공방에 오길 참 잘했

책공방, 삼례의 기록 / 이승희 / 책공방

23.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나도 책공방에 오길 참 잘했다

책공방, 삼례의 기록 / 이승희 / 책공방


161028 책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 그제가 돼서야 제대로 훑어볼 시간이 났고 어제서야 비로소 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문은 책으로 만나니 내 마음을 잘 표현해주었다는 점에서 썩 괜찮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던 책의 두께는 꽤 두꺼웠다. 책을 받고도 미처 이를 기뻐할 틈도 없이 다음 일들을 해야 하는 내 상황이 난 너무 싫었다. 소중한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듯 지나쳐야 함이 못 마땅했다. 


그러면 그 일이라도 진도가 쭉쭉 나가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렇지가 않았다. 일은 쉽지도 않았고 백 프로 내 맘처럼 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일이 있으면 내 퇴근 시간은 늦어지고, 일이 바쁘면 함부로 약속을 잡을 수 없고 일이 있으면 휴일도 반납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매 순간 보람과 희열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니 열심히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그 역할이 한 번씩 너무나 버겁게 여겨졌다. 


나는 이러한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 비단 나만이 가지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버겁다고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때때로 이것이 잘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나는 이렇게 머리와 감정이 복잡해질 때면 기록을 한다. 이 습관은 책공방에 와서 배운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내가 책공방에서 했던 기록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기록을 하며 책을 만들며 최소 열 번도 넘게 읽었을 이야기들이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새롭다. 어제는 내 처지가 딱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부글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끙끙 앓았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처지에 다시금 눈물을 머금고 출근을 했다.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고 밀려 있는 일을 뒤로하고 땡땡이 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기대를 품고 보냈던 메시지에 답장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고심 끝에 메시지를 작성해 띄웠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답신이 오리라 생각했고 어쩌면 좋은 소식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그제야 답신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말이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이따금씩 그 일을 떠올리긴 했지만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사정이 있어서 답신이 늦어졌노라고 정중한 사과와 함께 말이다. 아직 일이 잘 될 런지 어쩔 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연락이 왔다는 점에서 그동안 꿍해 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풀어지고 말았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쉬워 보이는 일도 엉뚱하게 문제가 생겨 일이 꼬이는가 하면 엄두가 안 나는 일도 하다 보면 어느새 끝이 보이기도 한다. 삶은 내 생각과 마음처럼 따라줄 때도 있는가 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렇게 흘러가게 놔둬버리면 재미가 없다. 내 삶을 계획하고 설계해서 삶을 만들어 가 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 맛을 절대 잊지 못한다. 나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한 채 이렇게 힘들지만 재미난 삶을 살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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