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친애하는 그대에게
<시쓰는 임주아와 책만드는 이승희의 서신교환>
03.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만듭니다
삶은 순간순간 우리가 내리는 결정에 의해 펼쳐진다. 정신지도를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수록 이 결정이 우리가 추구하는 결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는 진정 유익한 것이 될 수 있다.
_ 『장인의 공부』 중에서
주아님,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한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 테지요. 그렇게 뜨거워지는 날씨처럼 우리 주변의 상황도 뜨거워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코로나 19 청정 지역에 속했던 완주, 익산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그대와 내가 애정 하는 삼례에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았던 2년 전 분위기와 달리 지금은 ‘이러다 무슨 일이 나는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남북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정말이지 이렇게도 시시때때로 바뀌어 버리는 상황에 따라 마음이 요동을 칩니다.
그대로부터 늦은 밤에 도착한 편지를 새벽녘에 읽었습니다. 아직 정신이 채 들지 않은 몽롱한 상태였는데 편지를 읽다 보니 어슴푸레했던 눈이 또렷해짐을 넘어 촉촉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곧바로 답장을 쓰고 싶어 혼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니 그때의 마음과는 다른 마음이 되어 답장을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선 우리가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되었는지 호기심을 가졌을 텐데 그대의 이야기로 얼마간 해소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저의 진정 어린 마음을 알아봐 주어 무척 고맙습니다. 아무런 친분도 없는 저와 책공방에 찾아와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마음을 담아 그렇게 기록을 해주어 참 고마웠습니다.
그대가 책공방을 찾아왔을 때 저와 선생님은 이미 백기를 든 상태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했던 약속을 한 사람이 물거품으로 만들고 거기에 대해 사과나 양해는커녕 법률 대리인을 앞세워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저에게 그 약속이 유효함을 증명해주었던 관계자는 모습을 바꾸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주장했습니다.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여겨 외부에 소식을 알리자 관계자로부터 양측이 똑같이 잘못했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대가 찾아와 주고 알아봐 주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망각한 척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셨지요? 그 물음에 저는 ‘Always, 항상’이라 답합니다. 그대에게 그 일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이 되었듯 저에게 그 일들이 잊지 않고 살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2018년부터 저에게 벌어졌던 악몽 같았던 일들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잊은 척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잘 기억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때로는 잘 잊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언젠가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어쩜 이렇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느냐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선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것이 인생의 묘미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선생님 말이 맞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내 마음대로 된다면 좋기만 할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쉬이 이루어지고 주어진다면 우리는 ‘소중함’이라는 마음 자체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대와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서로에게 가지는 마음을 나눌 만한 누군가가 우리 곁에 이미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를 모른 채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우리가 그것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쉬이 얻어지지 않았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아님이 과거에 썼던 시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참 다행한 일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쓴 시가 내 마음에 쏙 든다면 그대는 아마도 시 쓰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시를 쓰고 난 다음에 더 이상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저 스스로가 마음에 드는 날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날이 많습니다. 그 마음이 저를 제가 원하는 저의 모습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그 마음이 저를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대도 시가 마음에 들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기고 지금 그 마음이 더 마음에 드는 시를 쓰기 위한 첫걸음임을 떠올리며 다시 쓰고 고치는 일에 몰두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 쓰는 일을 멈추는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를 쓰는 일이 저는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저의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쓰다 보면 마음에 드는 글을 쓰게 되는 때도 만나게 되었던 저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일단, 무조건 쓰기 바랍니다. 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무룩해하거나 늘어져 있는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시를 쓰는 일이 ‘시쓰는 임주아’에 가까워지는 일일 테니까요.
저는 요즘 무척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앉아 펜을 들기까지 사실은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 청소기를 돌리고 손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편지를 쓰고 난 후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고 정리하느라 마음이 분주합니다. 앞서 말한 집안일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 하다 보면 누가 내 시간을 갉아먹는 것처럼 시간을 빼앗긴 기분입니다. 이밖에도 올 초에 쓰기로 계획했던 세 권의 책 중 하나인 ‘책 만드는 과정’에 대한 책 원고를 쓰는 일을 비롯해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독서모임과 필사모임, 벌써 세 번째 시즌인 책만들기 모임을 운영해 보려 준비 중입니다. 원래는 이번 주부터 슬그머니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삼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2주 뒤로 미뤘습니다. 이러한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돈이 되거나 돈이 벌리는 일이 없어서 가끔은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은 모두 제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들이라 즐거이 임하려 노력 중입니다.
책공방을 잠시 떠나왔으나 여전히 저는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책공방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하며 알찬 시간을 보낼 때 주변의 제 친구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부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고 나중엔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저보다 제 친구들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 친구들이 저를 부러워했던 마음은 아마도 제가 가진 꿈과 그 꿈을 향한 열정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저는 지금 그 힘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의 최전선으로 가고 싶다는 주아님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합니다. 우리는 여러 번 흐트러지고 쓰러질 수 있지만 그때마다 다시 정돈하고 일어설 수 있다면 흐트러짐은 흐트러짐만이 아니고 쓰러짐도 쓰러짐만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요동치는 마음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흐트러지고 쓰러지는 것보다 다시 일어서는 힘에 집중하여 시 쓰는 일에 몰두하길 바랍니다.
그대의 뜨거운 편지를 잘 받고서 씁니다.
2020년 6월 28일 오후 4시에 이승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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