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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03. 2020

33. 기록 예찬서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 안정희 / 이야기나무


33. 기록 예찬서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 / 안정희 / 이야기나무


180311 오롯이 사적인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온전한 내 생각도 다른 사람과 사회, 역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성된 ‘공유된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다.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틀인 언어는 사회적 약속으로 인간의 생각과 활동은 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의 독자성은 사람들과 더불어 엮이며 사회로 흘러나왔다가 다시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을 잉태한다. 국가 주도로 작성된 기록물이 아닌 민간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 개인의 기록물이 지닌 공공성에 주목하는 까닭은 기록이야말로 우리의 ‘공유 기억’을 만드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유의 틀을 만들어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와 인류의 삶을 꿈꾸도록 돕는다. 이를 기록의 확장성이라 하겠다. 이렇듯 기록의 공공성과 확장성에 주목하다 보니 기록의 보관과 폐기를 결정하는 기준에서도 사회적 의미를 살피게 된다.


개인의 사적인 글쓰기와 그 기록물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밝히고 공공기록물로 인지, 공유, 활용할 방법을 꾀한다면 개인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가 될 것이다. 누구나 저만의 방법으로 자유롭고 다양하게 글을 쓰지만 ‘더불어’ 인류가 되는 일은 또 다르다. 광장에서 기록물을 펼치면 사라질 기록과 남겨야 할 기록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많아진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돌아보기, 보통 사람들의 느린 아카이브를 제안한다. 우리는 그동안 빨리, 그리고 많이 생산하느라 지속할 수 없는 미래를 만들었다.


아카이브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경쟁을 멈추고 함께 돌아보게 한다. 기록물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그 보존과 폐기를 결정하면서 개인으로서의 나와 사회적 인간인 나,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본다. 부분적인 쓰기 행위와 그로 인한 결과물들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파악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구해진다. 아카이브는 나의 성장과 시대적 흐름을 한 타래로 엮는 일이다. 보통 사람들의 기록물에 공공성을 살피는 일은 개인에게서 인류를 발견하는 일이다. 인류를 만드는 일이다.- 기사 본문 중


지난 기록을 정리하다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어디서 내가 이런 글을 베껴 써두었을까 찾아보니 역시. 2015년에 나온 책이지만 기록에 관한 아직까지 이렇게 잘 정리된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창 기록의 중요성에 눈을 막 뜨고 풍덩- 빠져 있던 시기라 읽을 당시에는 크게 감동하기보다는 고급스럽게 잘 정리되었다고만 생각했었다. 허나 요즘 나는 내가 알고 있고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남들에게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이 꽤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시금 이 책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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