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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15. 2020

02. 개똥 같은 세상이다

- 어쨌거나 두 가지 사실은 공존한다

02. 개똥 같은 세상이다
-어쨌거나 두 가지 사실은 공존한다

자꾸만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울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고 그런 삶을 살아가고자 애를 쓴다. 책상에 앉으면 잘 보이는 위치에 요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대한 가이드를 붙여 두었다. 그 바로 옆에는 하루에 주어진 시간 안에 매일매일 하고 싶고 하면 좋을 일을 하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낼 지에 대해 적어 두었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즉흥적이고 무질서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만들기는커녕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원고 작성은 벌써 3개월 가까이 업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있고 그 밖에 하기로 마음 것들도 머릿속에서만 진행 중이다. 아등바등-하면 간신히 쓰고 있는 일기도 3일째 밀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지만 몸은 요지부동일 때가 많았다. 살아있지 못한 시간이었다. 엄마 집에 가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뉴스타파에 죄수와 검찰 시리즈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보았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버젓이 벌어졌고 그 증거와 증인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도 무고한 사람들이 죗값을 치르고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쩌면 나와 상관없는 일들 일 수 있는 일들에 나는 분개했고 그러면서도 나의 분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인지했다. 정확하게 알려하고 깊이 들여다보려 하고 잘 생각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만이 답이었다. 이러한 세상일수록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을 실었다. 그러는 사이 나의 코는 석 자를 넘어 넉 자, 다섯 자를 향해가고 있었다. 내가 있어야 이 세상이 이 세상이 될 수 있는데 이러다간 내가 없어질 것만 같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상과 현실을 오가며 꿈을 꾸고 정신을 차리길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누군가의 예견대로 혹은 작년에 뜨거웠던 그때처럼 우리는 또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불쑥불쑥- 가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자신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날을 새우고 있다.

한쪽에선 이 사안에 대해 왜 4년을 참았느냐 했고 빼박-증거를 내어 놓으라, 정치적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다른 한쪽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고인을 무책임하다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는 것과 장례를 간소화하는 것이 고소인과 연대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2차 가해를 멈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안타까운 일이고 일어나선 안 되는 일임에 분명하다. 고인이 되어버린 그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고 그 일로 인해 더 정확히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그는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 많은 문인들이 친일을 했다. 문인들 중에 친일을 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일 정도다. 허나 친일을 했던 문인들의 작품 중에는 100년이 흘러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들이 다수이고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그 문학인들의 작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여도 그들이 친일을 한 것이 무마될 순 없다. 역으로 그들이 아무리 친일을 했다고 해도 작품이나 예술성이 폄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작가의 인생 또한 작품의 일부라고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두 가지 사실은 공존한다.

지금 우리를 뜨겁게 만드는 일은 위의 사안과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지만 어떠한 면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시민 활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그의 정책이나 고공 분투했던 활동 이력은 그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라서 가능했던 많은 일을 했고 그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은 희망을 얻기도 했고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우리가 아는 그라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그 정도를 막론하고 반대편의 주장대로 일부 세력의 공작이었다 하더라도 넘어가지 않았어야 했다. 많이 힘들었을 테지만 지금과 같은 선택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읽고 쓰지 못하며 살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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