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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Mar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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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무섭게 와버렸다

사진은 재작년입니다 헛된 기대 없으시길.

지난 월요일, 아랫녘에 다녀왔다. 오며 가며 보니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날이 따뜻해짐을 넘어 더워졌다 느끼고 생각했으나 체감온도와 시각 온도는 다르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실컷 껐는데 어느새 다시 살아나버린 기분이랄까. 작은 불씨라 큰 이상은 없을 것 같지만 이 불이 크게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발등에 전해지는 온기가 나의 마음을 잡아먹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온 것처럼 여름도, 가을도, 그다음 겨울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와버릴 것만 같은 무서움이다.


그러나 사실, 봄은 핑계고 내 마음이 문제였다. 지난주에 막막한 소식을 두 개나 접했다. 하나는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느끼는 그것이고 또 하나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힘듦보다는 희망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삶은 불확실함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희망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전자는 예상 못한 일이었고 후자는 예상을 하긴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꽃길까진 아니어도 회색일 줄 알았다 아니다 솔직히 꽃길이길 바랐으나 까말 줄은 알았다. 근데 현실은 아주 시커멓다. 사안 자체는 그렇게까지 별로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소식을 접하기 전이나 후나 내 생각이나 선택에 있어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하지만 감정은 마구 요동을 치고 또 쳤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게 성큼 다가와 버린 무서운 봄을 마주하니 정신이 들기도 했다. 자유의 생활을 하며 돈이 되는 일만 하는 것이 습이 되어 진짜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은 힘과 마음이 딸려 하지 못하고 등한시했다. 읽어야 할 책은 물론 써야 할 글들이 첩첩산중이다. 하나같이 돈이 되는 일과는 멀고 내가 잘하고픈 일에는 가까운 일이다.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와 벌써 몇 개월째 밀려버린 원고의 초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아주 징글징글하다. 이대로 끝이면 정말 너무너무 좋겠지만 최종이 아닌 초고인 탓에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USB 분실을 핑계로 너무 내팽개친 결과다.



어쨌거나 날이 추울수록 봄은 가까워진다. 언뜻 날이 따뜻할수록 봄이 가까워지는 것 같지만 한 발짝 멀찍이 들여다보면 날이 추울수록 봄은 가까워지고 날이 따뜻할수록 봄은 멀어진다. 이건 마치 무언가가 바닥을 칠수록 올라올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지난주 지지난주 내내 중요한 자료를 만드느라 이제는 다시없을 ‘삼례, 책공방’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또 보았다. 그때는 날이면 날마다 일에 치여 사느라 내 삶이 거의 없는 고3 수험생 같은 생활이어서 힘이 들어서 울기도 퍽 많이 울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 나는 거의 대부분 스마일이고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아무것도까진 아니고 ‘그쯤이야’ 혹은 ‘그 정도는 뭐’ 정도가 좋겠다. 나는 또 한 번 몸의 힘듦과 마음의 힘듦이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힘듦에 있어서 마음이 몸보다 한 수위라는 생각에 힘을 실었다. 당시에는 너무 힘든 나날의 연속이라 생각했던 날들이 시간의 발효를 통해 반짝이는 것처럼 나는 지금의 시간 또한 그렇게 빛이 났으면 좋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지금 내가 마음을 쓰고 집중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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