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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19. 2020

41. 삼백육십도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삼백육십도 이야기 / 승효상 / 수류산방 / 2012


41. 삼백육십도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삼백육십도 이야기 / 승효상 / 수류산방


180815-181022 이 책은 한 마디로 골프장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이 건축가 승효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수류산방에서 나온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승효상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수류산방에서 나오지 않았어도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이러한 접근법으로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마도 이것이 수류산방의 힘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비해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 어떠한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잘 기록하여 책으로 엮어지는 것들이 많아진 듯하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도 그러한 측면에서 관심을 가졌었다. 또 한편으론 얼마나 대단한 골프장이기에 골프장을 짓는 이야기를 책으로 까지 내고 승효상 선생님은 클럽하우스를 건축하고 수류산방은 이런 책을 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머리가 유난히 복잡하던 지난 8월 그렇게 알록달록한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의 그런 알록달록한 마음은 초록색이 된 듯하다. 책을 보면서 내가 흥미롭게 여겼던 몇 가지는 이러하다.


첫째,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이러한 책들 대부분은 건물주인 대표에 대한 자화자찬, 칭찬 일색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정도가 과하지 않고 적당했다. 대표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대표에게 할애된 페이지가 적었다. 또 편집자가 대신 써주고도 대표가 직접 쓴 것처럼 하는 것이 흔한데 그러한 형식을 빌지 않았다. 인터뷰 형식이었고 간결했다. 필요한 것들을 물었다. 대표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그러한 미화가 거북한 것이 보통인데 적당했다는 것이다. 


둘째, 여러 사람들의 관점을 통해 사물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인상 깊었다. 모든 이야기가 대표와 골프장이 얼마나 훌륭한 지에 대한 이야기로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러기보다는 골프장 하나를 두고 다각도의 시각을 담기 위해 애쓰지 않았나 싶다. 또한 공간을 잘 보여주고자 선택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의 판형 또한 인상 깊다. 


셋째, 사진이 정말 예술이었다. 책을 통해, 사진을 통해 만난 그곳은 정말이지 멋졌다. 가보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골프에 대해 일도 모르지만 골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골프에 관심이 갔다. 


이 책에서 꼭 기억하고 싶은 한 부분을 꼽으라면 기어코 우겨서 이 두 부분을 선택할 것이다.


 1. “좋은 건축이란 사용하기 편하고 튼튼하고 경제적이며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형태와 색채 등 외관에 대한 감각적 인상에 따른다. 하지만 실제 접하고 경험할 때의 예술적 감동, 그리고 이성적 생각을 거치며 얻는 윤리적 가치 판단에 이르기까지 다차원적 속성을 갖는다.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사물과 행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즉, 본연의 참모습을 보여줄 때 드러나는 가치다.” _본문 중


좋은 건축과 좋은 디자인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진정 좋은 것들은 이렇게 서로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부분 이것이다.


2. “건축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회화나 조각과 같은 예술품과 다르다. 회화나 조각은 원하는 사람이 자극이 필요한 시각에 선택적으로 찾아가서 강하고 짧은 경험을 하고 돌아오면 그만이지만, 건축은 늘 같은 자리에 고정되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용자들과 심지어 오가는 사람들에게도 노출된다. 장기적인 예술 경험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건축 예술의 감흥을 어쩌다 마주치는 예술품에서 보는 자극적 강렬함으로만 버틸 수는 없다. 건축은 예술이지만 동시에 일상이기도 하다.”  


건축이 여타의 문화 혹은 예술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짚어 준 부분이다. 건축에 대해서는 ㄱ자 정도만 아는 나라서 그런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독서지도를 배울 때 강사님께서 그림책은 최소한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림을 보고 그다음에는 글을 보고 또 그다음에 글과 그림을 함께 보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 책을 그림책 읽듯 읽었다. 사진을 보고 글을 읽고 사진과 글을 함께 보았다. 강사님께서는 여러 가지 의도에서 그렇게 보라는 제안을 하신 것이고 그중에 하나는 ‘깊이 읽기’였다. 


글밥이 많지 않아 금방 읽으리라 생각했던 책을 한 달 가까이 끼고 있었다. 선생님 말대로 정말 징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근데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건축에 대해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좋다. 시야가 좀 더 넓어질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깊이 읽기의 효과가 아닌가 싶다. 읽는 것이 쉽지 않아 그렇지 책은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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