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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21. 2020

42. 하지 말라는데도 하고 싶은 마음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브로드컬리 편집부 / 브로드컬리 



42. 하지말라는데도 하고 싶은 마음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 브로드컬리 편집부 / 브로드컬리 


181101 이 책이 이상한 건지 내가 이상한 것인지 책을 읽고 또 읽고 읽으면 읽을수록 책방이 하고 싶어 진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책방 주인 모두가 다들 쉽지 않다, 어렵다 하는데도 나는 자꾸만 책방이 하고 싶어 졌다. 그럼 다들 내가 원래 책방이 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 하겠지만 그건 정말로 아니다. 


책방에 대해 나는 아주 이상한 혹은 나쁜 꿈을 꾸고 있다. 책방 운영을 해보고 싶은 것은 맞지만 내가 사업자 내고 대표가 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나는 대표의 마음으로 일을 할 수는 있어도 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온전하게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고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선택이 내 밥벌이와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에 대한 부담감이 몹시 싫다. 어쩌면 권리는 찾고 의무는 하지 않으려는 못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이게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본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지점의 지점장 혹은 매니저의 역할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 생각한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 그러는 것인지 그럴 용기가 없으면서 욕심만 많은 것인지 아무튼 그러하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다 보니 자꾸만 책방이 하고 싶어 진 것이다. 그러다 만약 책방을 한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를 생각하게 됐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책방 주인들은 다들 책을 사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사랑하는 방법이 같지 않았고 생각이 같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생각대로 공간을 준비하고 꾸려나가고 있었다. 허나 다들 책방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사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도서 공급률 차등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책을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이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내어 놓는다. 


도서공급률이 통일되어야 한다거나 합리적인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어야 한다. 좋은 책을 출판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책을 만날 수 있는 서점이 많아져야 한다. 이러한 의견에 적극 동의하였고 책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서점에 와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모습을 비판하는 이야기에도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렇게 인터뷰하신 책방 주인장분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다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 


부끄러운 생각이 불쑥 올라와버려 더 이상 한마음이 될 수 없었다. 앞서 말한 이런 문제나 노력이 서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생각의 꼬리는 이내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매장에서 제값을 다 주고 옷을 구입하는 것이 손해 보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브랜드의 똑같은 상품을 인터넷에서는 적게는 5% 많게는 15% 가까이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더 저렴하니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이즈가 안 맞거나 실물과 사진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 나는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할 것처럼 실물을 직접 보거나 착용을 해본 후에 인터넷 주문을 하곤 했다. 내가 관심과 애정을 두고 있는 서점에서 그런 적은 없지만 나 또한 옷가게에서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곤 했었다. 


언뜻 보면 그럴 수도 있고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하지 않고 쇼윈도 혹은 피팅룸으로만 이용하게 된다면 아마 많은 매장들이 사라질 것이다. 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나 같은 사람에게 별도의 서비스 비용을 부과하게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껏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잘못되었음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형편이 넉넉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핑계 따윈 대고 싶지 않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입지 못 했을 옷이라면 나는 그 옷을 사지 말았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거나 양보를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서점에서 사진만 찍고 상품인 책을 구입하지 않았던 것은 아직 사람들이 큐레이션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나는 그러한 인식의 부족함이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나처럼 부끄러운 마음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그리고 어쩌면 현재 우리가 무료로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지금도 물론 광고로 그 비용을 대신하고 있지만 말이다. 인터넷보다 더 비싼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내가 좋아하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일은 작게는 그 매장을 지키는 일이고 크게는 나중에 갑작스럽게 그 매장의 부재로 인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나를 위한 일이다. 저렴하고 간편한 플라스틱 컵 대신 더 비싸고 무겁고 귀찮은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는 것이 손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더 이상 눈앞에 작은 이익을 위해 더 큰 손해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책 내용 중 마음에 쏙 들었던 내용을 꼽으라면 이 부분을 꼽고 싶다.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10만 부씩 팔리는 사회보다도, 열 권의 책이 1만 부씩 팔리는 사회가 좋다고 본다. 10만 부가 아닌 열 권의 1만 부가 나오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서점이 필요하다.’ 요즘 의도치 않게 ‘다양성의 공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지난번 통영에 갔을 때 내가 좋아하는 분께서 어떤 인류학자가 했던 말을 전해주셨다. ‘마을을 바꾸려면 서점을 만들라, 책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때문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최근에 책을 읽지 않고 쌓아만 두어도 인지능력을 비롯한 다른 여타의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여기저기서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인터넷이 아닌 우리 주변에 가까운 서점으로 가서 책을 구입하자.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나도 서점을 해볼 용기가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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