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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Jul 29. 2020

48. 무작정 크고 넓고 많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녀왔습니다, 뉴욕 독립서점 / 안유정 / 왓어북



48. 무작정 크고 넓고 많아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녀왔습니다, 뉴욕 독립서점 / 안유정 / 왓어북


190308 이 바쁜 때에 무슨 책인가 싶지만 벼락치기 공부 때 엄청난 능력이 발휘되듯 요즘 나에게 책 읽기 및 기사 읽기는 벼락치기 공부 같이 느껴진다. 글을 써야 하는데 뭐라 써야 할지 그 느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잘 표현되지 않으니 자료를 보고 또 볼 수밖에 없다. 허나 벼락치기 공부는 벼락치기에 불과해 족보 노트가 없으면 곤란하듯 나의 과제 또한 마찬가지다.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읽어보지만 바로 이거야 할 정도로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소하게 작은 도움들이고 반면교사인 경우가 더 많다. 물론 무수히 많은 티는 그 티 하나하나가 잘 보이지 않지만 옥에 티는 잘 보이듯 잘 만들어진 책일수록 그 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좀 어중간-했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책방의 숫자도 그러하고 내용도 깊이가 있다고 하기엔 가볍고 가볍다고 하기엔 곳곳에 무거운 느낌이다. 어중간함은 적당함과는 엄연히 다르다. 가장 어중간했던 것은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이 과연 독립 책방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쉬이 읽어낼 수 없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서점은 동네 책방이지 독립 서점이라고 하기엔 좀 어색하다. 뉴욕과 서울은 치솟는 임대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나 본 두 도시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책방 주인들의 마이웨이 의식이었다. 일부의 서점은 비즈니스를 고려해서 독자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려 노력하지만 일부의 서점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철학이 있는 서점들이 망하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내 기분을 좋게 했다. 어떤 책방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도 버텨내고 있다는 것은 서점 주인이 돈이 많거나 사람들이 그 책방이 망하지 않도록 책을 구입해주고 있다는 것인데 책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는 후자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점에 직원으로 일을 하다가 돈을 모아서 서점을 열고 구 서점이 잘 돼서 건물을 사서 안정적인 서점 공간을 마련한다는 이야기는 마치 꿈만 같았다.


책의 구성은 여러 서점이 저자의 의도에 따라 분류되어 있고 하나의 책방을 소개하는 챕터는 전반부에 책방 소개 및 감상이 후반부에 인터뷰 내용이 있다. 인터뷰는 대부분 직원과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책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뉴욕의 책방이 대체로 그러한 것인지 중고 책을 취급하는 곳이 많았다. 어떤 중고 책방의 경우 책의 외형이 멀끔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묻자 책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콘텐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겉이 조금 낡거나 남의 손을 탔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만나게 됐다. 이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동의하는 쪽에 가까워 이 대답을 통해 인터뷰어의 마음가짐이 읽혔다. 또한 누군가는 책은 싸다고 해서 쟁여놓는 생필품과 달리 그 안에 담긴 가치에 따라 구매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책은 얼마나 저렴한가 보다는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의 어중간함을 등한시하게 해 주었다.


“ 최대한 많은 층의 독자층이 아닌 명확하게 정의된 소수의 독자층 / 다양한 고객이 방문하지 않지만 오히려 다른 서점에 비해 확실한 고객층을 확보/ 타깃층을 명확히 할수록 확실한 고객을 위치할 수 있다는 법칙과 상통한다/ 명확한 목표를 지향하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이들의 전략은 더 많은 고객에게 눈을 돌리기보다 확실한 소수에 집중하며 책 큐레이션부터 커뮤니티 이벤트, 공간 구성까지 철저히 하나의 정체성을 지향한다/ 모두에게 적당한 예쁨을 받기보다 소수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서점/ 이제 세상이 말하는 관점이 아니라 내가 보는 관점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게 필요한 때구나 하는 생각”


이 책에서 내가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 세상이 말하는 관점이 아니라 내가 보는 관점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작정 크고 넓고 많은 것의 시대가 지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점에 가보고 싶은 충동은 느껴지나 그 책방들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서지는 못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위에 언급했던 내가 기억하고 싶은 메시지들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 위한 이유로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쉭쉭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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