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02 제6강 기록 생산자와 편집자로 나아가다_김진섭
2018 제3기 책공방 책학교(5/19~6/2) 기록
제3기 책공방 책학교 마지막 수업이자 졸업식이 있던 날, 수강생들은 양손을 무겁게 하고 책공방을 찾아야 했다. 책학교 졸업식을 위해서는 두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졸업식을 기념해 자기 스스로에게 졸업 선물을 준다 생각하고 책 한 권을 챙겨 올 것과 또 하나는 졸업식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나눌 음식 2인분을 준비해 오는 것이었다. 책공방 책학교 졸업식은 항상 분주하다. 모두 셀프이기 때문이다.
졸업증서는 판화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자신이 만든 졸업증서를 자신이 받아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잘 하고 싶다는 의지와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게 된다. 오래간만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사람에게 종이가 두 장씩 주어졌다. 동판에 잉크를 바르는 잉킹 작업을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종이를 위치에 맞게 올리고 판화 프레스를 힘차게 돌려서 결과물을 확인하는 작업은 열 번을 해도 열 번 모두 떨리는 마음이 된다. 잉킹 작업에 따라 종이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 사람의 마음을 쫄깃하게 하는 아날로그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열 명의 사람들이 각각 두 장 씩 스무 장의 졸업증서를 찍었지만 어느 것 하나 100% 똑같은 결과물은 없었다. 어떤 것은 잉크가 진하게 나와서 예쁘고 어떤 것은 연하게 나와서 예쁘고 어떤 것은 종이의 위치가 아쉽지만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 나름의 멋이 있었다.
졸업증서를 위한 판화작업에 앞서서 교장쌤의 판화 강의가 있었다. 판화의 역사, 판화의 종류, 판화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들기 전에 책 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장쌤의 이야기를 안 들어도, 책학교 강의를 안 들어도 판화 작업을 할 수 있고 책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듣고 하는 것과 듣지 않고 하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론과 실기가 어우러진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2분 순서로 들어갔다. 각자 가져온 간식과 함께 서로 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어떤 분은 남편 분이 만들었다는 파스타를 가져오셨고 어떤 분은 정성스럽게 사과를 깎아 오시고 김밥을 가져온다고 했던 어떤 분께선 김밥집이 문을 닫았다며 피자를 주문하시고 어떤 분은 처음으로 소떡소떡을 만들어 보았다며 가져오시고 어떤 분은 새까만 색이 인상적인 치킨을 가져오시고 어떤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를 가져오시고 그 밖에도 떡이며 빵이며 방울토마토를 가져오셨다. 먹거리를 나누며 제비뽑기를 통해 자신이 준비한 책 소개와 함께 자신이 그 책을 선택한 이유도 함께 상대방에게 전했다. 그리고 책학교에 다니는 동안 혹은 다니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꼈는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타자는 밝은 미소가 아름다운 금자쌤이 맡았다. 금자쌤은 매 강의 때마다 자신에게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으며 그동안 열심히는 살았으나 재미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재미있는 것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이야기로 문을 열어 주었다. 그 뒤로 내 손으로 처음 만든 책이 너무 마음에 들어 볼 때마다 뿌듯하다는 이야기부터 다양한 기록이 있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항상 다음 생을 기약했는데 사진작가 김지연 강사님의 이야기를 접하고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이 제한 때문에 처음에 치사하다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수준 높은 강의에 감사한 마음이 커졌다는 이야기, 1기부터 3기까지 세 번째 듣고 있는데 항상 색다른 즐거움이 있어 좋다는 이야기,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를 멈춰야 할 정도로 감정이 복받쳤다는 이야기, 다양한 삶의 결을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로웠고 다양한 취향을 흡수하려 노력했다는 이야기,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 이번 과정이 첫 디딤돌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 우연하게 자신의 전공에 대해 다시 흥미를 갖게 되어 조금 더 재미있는 삶을 준비해보려 한다는 이야기, 컨테이너 창고에서 끄적거렸던 기록이 출판이 될 수 있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듣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기쁘고 설레게 했다. 6차 시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족도가 참 높았던 듯하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는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한 해가 되려나 보다. 생각지 못하게 반갑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시간들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책학교 수강생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고 새삼 사람들이 참 귀하게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원래도 다사다난했던 책공방은 올 초부터 더욱 다사다난해졌고 그로 인해 이번 책학교 3기를 열기까지는 정말이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림길에 놓인 적도 많았고 하기로 해놓고도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그러나 오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던 이유를 찾은 듯했다. 교장쌤은 책학교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마도 나만큼이나 수강생들의 이야기가 큰 힘이 되고 마음을 후끈하게 하였나 보다. 교장쌤과 내가 처음 책학교를 준비하며 생각했던 바가 점차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다음 기수를 언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힘든 여정이지만 그래도 잘 가고 있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교장쌤은 삶을 살아가다 보면 갈급증이 생길 때가 있는데 그러한 때에 책공방이 또 책학교가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서 교장쌤은 또 다른 꿈을 이야기하였다. 나중에 이 학교가 10기나 20기가 되었을 때는 수강생들이 지금보다 더 다양해질 것이고 그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는 여러분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가 생길 테니 그때는 책학교 수강생들로만 이루어진 강사진을 꾸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이야기다. 그것이야말로 멋진 지역 출판 전문가 양성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