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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희 Sep 27. 2018

추석선물 같았던 시간

 

책공방 공방일지 180923

추석선물 같았던 시간


책공방은 명절 연휴에도 문을 연다. 사람들이 쉬는 주말에 문을 여는 것과 같은 취지인 듯하다. 처음에는 싫었으나 나중에는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여전히 싫긴 하다ㅎㅎㅎㅎ 그래도 나름 적응을 해서 스트레스 안 받고 잘 견디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집이 큰집이고 가까운 덕분이다. 요즘 나는 비석 치기 하듯 밀린 일들을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었다. 연휴에도 어김없이 열심히 나만의 비석 치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를 해왔다. 누군가 하고 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입장료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었다. 나는 잠시 당황하며 연휴기간 동안에는 무료입장이라고 답변을 했다.     


내가 잠시 당황했던 이유는 참 부끄럽게도 책공방에 있는 5년 동안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간혹 가다 입장권을 갖고 오지 않으신 분들께 입장권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몰랐다고 하기 일쑤다. 우리가 입장권에 대한 안내를 잘 하지 못 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내가 관찰해 본 결과 그 사실을 알고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무시한 채 들어오시는 분이 더 많은 듯하다. 며칠 전에는 일행 분 중 한 분이 먼저 들어와서 지키는 사람의 유무를 확인을 하고는 사람이 없다며 일행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하던 일이 있어 그 일을 마저 하느라 한 템포 늦게 나가는 동안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자신들끼리 하던 이야기를 내가 들었던 것이다. 내가 나가 입장권 확인을 하니 천연덕스럽게 입장권이 있어야 하냐고 물으셔서 좀 전에 말씀 나누신 것 들었다고 하니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시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가셨다. 정말 별의별 사람이 다 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이 친구의 질문을 받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차려져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명확해졌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이 친구는 나를 몇 번이나 놀라게 했다.     


한참을 공방을 둘러보던 그 친구는 불량 가죽 다이어리 코너에 있는 다이어리를 구입할 수 있냐고 했다. 나는 만들어진 제품을 가져가도 되고 거기에 있는 가죽들 중에 하나를 고르면 곧바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답변했다. 그 친구는 정말 그러냐며 반가워했고 그런 반가움은 상대방인 나조차 덩달아 반갑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혼자 왔기에 혼자 여행을 왔느냐 물으니 아버지의 고향이 이쪽이라 놀러 왔다고 했다. 그리곤 나에게 여기서 계속 일을 하셨냐 전공을 물어봐도 되느냐 질문을 해서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나는 답변을 해주고 이런 쪽에 관심이 많냐고 물으니 서지학에 관심이 많다고 했고 나는 대학생이냐고 무슨 과냐고 물으니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나를 놀라게 하였다. 무슨 고등학생이 서지학에 관심이 많냐 하니 자신이 진로를 그쪽으로 정해서 학교에서 그쪽과 관련해 자료조사를 하고 논문을 쓴다고 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그런 활동을 하는 거 보니 일반학교가 아닌가 보다고 하니 아니나 다를까 자사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신의 관심 분야가 명확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바람직한데 공부까지 잘 한다고 하니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 친구에게 몹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부러움 마음은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했다.     



처음에는 고서를 좋아했다가 연구해보고 싶은 책이 있어 서지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 친구에게 나는 며칠 전에 우리집에서 가져온 고서들을 보여주었다. 좋아할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그 친구는 그저 이런 책을 보고 이렇게 직접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너무 신기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의 그런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내가 내 앞에 놓인 책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나 신기하게 여기는 지점, 깊지는 않지만 그동안 선생님의 어깨너머로 배웠던 지식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어떠어떠하다는 이야기를 창피한 줄 모르고 쏟아 내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친구에게 부모님께서는 그런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물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공부를 잘하면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인 지위도 높은 그런 직업을 갖길 원하시지 않느냐 물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대답은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자신은 운이 좋게도 부모님께서 그러한 것보다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고 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그러한 바람직한 생각을 갖고 계신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 친구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자신에게 운이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지점도 놀라웠다. 정말이지 뭐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그 친구와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서둘러하던 일은 마무리하고 퇴근을 하며 생각하니 지금 그 친구 또래에 많은 친구들이 그 친구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친구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자를 모르니 우리집에서 가져온 그 책들이 정확히 무슨 책인 줄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리 귀한 책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심분야가 명확하니 별거 아닌 것에도 그런 격한 반응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어떠한 곳에 가서 책 만드는 기계나 그와 관련한 자료를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코드가 정해지게 되면 세상은 그것을 알기 이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진다. 때때로 너무 명확하고 세부적이라 대중적이지 않은 콘텐츠인 책공방이 버거울 때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확한 코드가 생긴 것이 좋을 때가 많다. 이것을 안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이것을 알게 됨으로 세상이 재미있어진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책공방에 있으면 추석 연휴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것처럼 달갑지 않은 일도 있지만 오늘의 만남처럼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참 행복하게 여겨지는 순간도 종종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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