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나마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로케 Apr 30. 2023

어느 댓글

지하철 이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보통 뉴스 기사를 많이 읽는 편이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지만, 남들 다 좋아하는 유튜브가 나는 여전히 어색하다. 그래서 굳이 활자를 찾아 읽는다. 뉴스를 다 읽고 확인하는 건 댓글. 어느 순간부터 남녀 갈라치기와 정치적 댓글이 주를 이루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을 울리는 옥석 같은 댓글을 찾을 수가 있다. 여기서 옥석 같은 댓글이란 내가 정말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는 그런 댓글을 말한다.


이런 습관은 다른 콘텐츠를 볼 때도 계속된다. 웹툰을 볼 때도 댓글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습관화되지 않는 건 내가 집행하는 광고에 달린 댓글(보다는 악플에 가까움)을 보는 거랄까, 하.하..) 오늘도 밀린 웹툰을 보다 문득 본 댓글에서 굉장히 담백한 어투의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나이가 들면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관계 조건이 점점 명료해진다. 성향 탓인지, 10~20대까지만 해도 '위 아 더 원~ 위 아 더 칠드런~'을 외치며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잘못된 모토로 살았는데 관게를 지속하기 점점 어려워졌다. 여전히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성향이 있기는 해서 웬만하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도 최대한 상대방 편을 들며 맞장구쳐주는데, 어느 순간 이것도 피로해졌다. '내가 한 만큼 상대방은 나에게 해주지 않는다.'를 느낀 순간이었다.


요즘엔 관계가 담백해졌다. 관계에 있어 쿨 트러스트(cool trust)를 실천하라라는 김익한님의 말처럼, 어느 정도 맞지 않는다 생각되면 서서히 멀어질 수 있는 신뢰만 쌓고 있다. 대화를 해 보면 느껴진다. 이 사람이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인지. 하루 종일 똥 싸고 오줌 싸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만 해도 깔깔 웃음이 나는 즐거운 사람인지.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느 정도 공감해 주고 따뜻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명료한 기준이 세워지다 보니, 사람들이 걸러졌다. 아직도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서서히 멀어져도 상관없을 그런 사람들일 거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맞는 말이다. '슬픔은 타인과 나누지 않는다'가 나의 신념 중 하나라 후자는 잘 모르겠지만,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된 적은 있었다. 슬픔보다 고민을 나눴더니, 되려 무관심과 본인의 신세한탄이 되어 돌아온 적은 있었다. 기쁨과 슬픔, 고민을 나눠야 관계에서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듯하다.


생각보다 상반기 동안 '관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기도 했고, 멀어졌던 사람이 다시 가까워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우리 00년 지기야, 우리 벌써 0년이나 같이 일했군요!' 등 수치가 관계를 증명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온라인 독서모임을 하면서 완전히 깨졌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 심지어 본명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모임을 하지 않는 지금도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이 몇몇 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모르지만... 언젠가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면 누구보다 기쁘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