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삶에 불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회사원이 그렇듯 나도 8시간 동안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출퇴근 시간인 약 5시간을 합하면 거의 13시간을 회사일로 보내고 있다.(사실 출퇴근 시간을 업무시간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여하튼 회사를 위해 소비하는 시간이니 포함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내 눈에 '불평'이라는 필터가 씌워졌고, 회사의 모든 일이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직장 동료들은 나에게 실망할지 모르지만,(딱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쓸모임 멤버 외에 몇몇의 회사 사람이 내 블로그를 읽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애써 글 내용으로 날 떠보려 하지 말고 물어보려면 그냥 블로그 글 읽었다고 해도 된다...) 애초에 사명감이나 원대한 꿈 따윌 안고 입사한 회사가 아니었다. 물론 종교인으로서 이곳에 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지만... 여하튼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 왔다.'라는 전 동료와 달리 나는 그런 마음으로 온 회사가 아니다. 그냥 대학시절 나의 외부 활동이 이 회사에 맞아 지원했고, 그렇게 다니다 정규직에 지원해 꾸준히 다니게 되었고, 승급을 했고, 흘러 흘러 지금의 연차까지 온 거다.
그래서였다. 시작은 탈출을 위해서였다. 틈틈이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다 문득, '나는 왜 이직을 하려는가?'라는 생각에 멈춰 섰다. 그냥 모든 게 싫고 지겨웠다. 회사도 집에서 너무 멀었고, 달콤한 재택의 유혹은 연봉이 오른다면 이겨낼 수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내가 원하는 곳은 소위 '달나라'같은 곳으로 대부분 일류 업계였다. 일류 업계를 원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돈도 돈이지만, 나이 드는 처지에 마지막 영혼의 불꽃이라도 살려 열정적으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서류 탈락이 주는 의미는 무력감이자 지겨움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동종업계로 지원했다. 동종업계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늘 불평만 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불평이 나를 갉아먹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면접장인 7층으로 올라가는 그 엘리베이터에서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때 문득 든 생각은 '고로케야, 너 여기 왜 왔니? 왜 지원했니?' 였고, 애석하게도 나는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한 그 때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도망가고 싶었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속이 매우 답답했다. 이 순간은 앞으로 내 삶에서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면접은 순조로웠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려울 게 없었다. 다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동종업계라 그런지 경쟁 업체, 즉 내가 소속된 업체에 대한 질문이 80% 이상이었다는 거고, 나는 그 질문에 100% 솔직하게 답을 못했다는 거다. 가령 예를 들어, '얼마 정도의 광고비를 쓰는가? 그 기반으로 어느 정도의 광고비가 적합하다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연 00억 이상을 쓴다 말하고 싶었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그리고 내 일에 대한 나름의 기밀사항이었고,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질문과 대답은 이어졌다. '광고를 진행하면서 어떤 매체가 중요하다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000매체는 cpa 게런티 매체라 여기서도 꼭 해봤으면 하고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입을 그저 꾹 다물고 'cpa 게런티 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매체를 중점적으로 테스트하는 게 중요하다.'등 교과서적인 대답만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100% 전심을 갖고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게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나는 한 발은 냉탕에, 한 발은 온탕에 담은 채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동종업계에서 동종 업무로 이직한다는 건, 내 몸을 뒤집어 고로케라는 사람의 장기까지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지원해야 함을 몰랐던 거다. 나에겐 아직 현재 회사의 내부 기밀(은 아니지만 노하우랄까)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있었고, 이를 꺾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나의 이런 미지근한 태도와 연봉협상 실패로 인해 최종 탈락 통보를 받았다. 사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음이 상당히 심란했다. 반차까지 쓰고 뭘 하고 있는지, 도대체 34세의 나이에 왜 이리 방황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생애 첫 이직 면접은 생각보다 배울 점이 더 많았지만, 뭘 원하는지 모를 나의 이런 미지근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아직은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올해 처음으로 나보다 직급이 낮은 친구와 같이 일하게 된 점도 나름 배울 점이 많다. 바뀐 업무는 완벽하게 적응했지만, 어쨌든 싫어하는 일에도 배울 점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관계 속에서 올해 정리 중인 것도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회사나 일에 대한 욕심을 크게 두기 보다, 개인적인 삶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좋다. 여하튼 결론은, 나는 아직 머물러야 한다는 건데 그게 며칠이든, 몇 달이든 더 이상 불평이 아닌 아주 작은 거라도 배우면서 머무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