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잠자는 시간이 6시간 정도라 치면, 나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설령 재택근무라 할지라도 각종 업무 메신저와 카톡, 통화로 대화를 하고, 마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대화'의 사전적 의미와 거리가 멀지만 강아지들과도 (일방통행식) 대화를 하니까.
무수한 대화 속에서 감명을 얻거나 특별히 '이거다!'싶은 순간은 없었는데, 요즘 들어 그런 느낌이 잦았다. 뭔가 꽤 오랫동안 잔상이 남는, 시간이 날 때 한 번씩 곱씹어 보게되는 그런 말들 이었다.
누구나 처음이 있듯, 나도 팀장이 처음이라 그랬어. 미안해.
팀장과 면담을 했다. 면담은 통과의례와 같은, 상반기 실적을 정리하고 이 아이가 어떻게 지내나 보는 뭐 그런 과정이다. 면담은 늘 비슷했다. 나는 모든 게 숫자로 증명이 가능한 업무를 오랜 기간 하고 있었고, 숫자를 기반으로 목표 100%를 달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달성을 못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논의를 하는 자리였다. 그날도 그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최근 나와 같이 일하게 된 사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별히 어려움은 없지만, 꽤나 열정적이고 저돌적인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연초부터 골치가 아팠던 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팀장이 나에게 강조한 포인트는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하면, 상대방은 본인이 잘못한 부분에 대한 인지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냈다'는 점만 기억한다.'라는 거였다. 그러니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나도 팀장이 처음이라 그랬어, 미안해."
대화를 하던 중 팀장이 갑자기 나에게 사과를 했다. 정식으로 한 사과는 아니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지나가듯 던진 말이었다. 아마 지금 기억 못 할 말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저 말에 생각보다 놀랐고 당황했다. 오래전 광고를 처음 시작했을 적에 데이터 분석으로 자주 혼이 났었다. 그 당시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냐면, 팀장의 일방적 피드백이 나를 괴롭히기 위한 생떼이자 트집이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여하튼, 팀장이 사과를 하던 그 순간, 내가 놀랐던 건 '사과'라는 포인트가 아니라, 팀장 본인도 그 당시의 피드백이 감정적이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나?라는 거였다.
그 뒤로도 저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팀장에게 사과를 받아냈다!는 그런 치졸한 마음보다는, 그냥 저 사람이 나를 보면서 1%라도 찜찜한 감정이 있었던걸까 등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복잡했다. 물론 그 뒤로로 (어색한)우리 사이는 변함이 없지만, 언젠가 나도 사회 생활을 더 하고 경력이 쌓이면 누군가에게 저런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나도 리더가 처음이라 그랬어, 화를 내서 미안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