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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ul 30. 2023

뭉툭한 연필심

몇 년 전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 되고 싶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싶다는 말을 일 년 정도 반복했었던 것 같다. 피곤한 삶과 관계 속에서 많이 지쳐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인격이나 성향에 대해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대충 짐작해 보면 코로나 전에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너무 싫어 로봇이 되고 싶다 했고, 코로나를 겪고 난 지금은 소위 말하면 쿨 다운, 즉 한 김 식힌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한 김 식어도 너무 식은 거 아닌지, 새삼스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노력하면 성향도 바뀔 수 있구나'를 온몸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사건의 발단은 여럿이었다. 가령 같이 일한 사람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동료를 당황케하거나 섭섭하게 만든다든지(진짜 기억이 안 난다), 모두가 기억하는 사건을 혼자만 기억하지 못한다든지, 말해놓고 금세 까먹어 다른 이들을 섭섭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요즘 오랜만에 PM으로 일하며, 4년 전쯤 일했던 분과 같이 일하게 됐을 때였다. 팀장과 (당시 내가 힘듦을 토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료는 '고로케가 그때 많이 고생했었지. 고생이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이야.'라고 말하자마자 나는 '제가요?'라고 반문했다. 연기가 아니라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동료에게 정말 아주 세세한 이야기를 콩트식으로 듣고도 '아, 그랬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뒤돌아보니 최근 나의 이런 무신경함과 무뚝뚝함, 감정 없음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전의 내가 느꼈던 그 감정, 나만 당신과의 일을 이렇게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그때 가졌던 그 서운함이란 감정을 다른 이에게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동시에 놀랐던 점은, 성향도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점과(노력이라기보다는 코로나가 준 사회적 거리 두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게 된 것 같지만), 몇 년 전에 비해 타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능력이 월등히 좋아졌다는 거다. 타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동시에 그의 단점과 장점을 알아내서 어느 정도 비위를 맞춰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능해졌고, 어떤 사람도 내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동일시하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됐다. 


하지만 요즘 문득 주위 사람들로부터 서운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가, 두껍고 거친 선만 그릴 수 있는 뭉툭한 연필심이 아닌 어느 정도 가느다란 선을 그릴 수 있는 세밀한 연필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밀하고 뾰족했던 내가 뭉툭해지기까지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는 노력과 가슴 시린 묻어둠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다시 어느 정도 이전의 내 모습을 찾고 싶다 생각했다. 노력으로 뭉툭해졌다면, 다시 노력하고 갈아서 세밀해질 수 있기를. 그래서 또 내년 어디쯤에 세밀한 나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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