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이직 욕구가 다시 끓어오른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올해 몇 번의 시도와 면접 등의 과정을 겪다 보니 살짝 이직 번아웃이 왔었다. '뭣하러 이리 힘들게 옮기려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누가 나를 내쫓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해야 하나라는 사실에 잠깐 현타가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이직 욕구가 끓어오르는 나와 마주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몸담은 업종에서는 더 이상의 발전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더 이상의 재미를 찾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내 나이 30 중반, 꼭 발전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이렇게 워라벨에 맞춰서 지금처럼 재택근무 때는 퇴근 후 나만의 시간을 즐기면 된다. 그런데 나는 뭐가 부족하다 느끼는 걸까?
내면과 마주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화가 나거나 짜증 날 때는 내 안의 나와 대화한다. 즉, '뭐 때문에 짜증이 났니?' 등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가령 아주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동료의 근무태만이라든지(월급루팡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은 나 자신에겐 솔직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여하튼 그랬다. '이번에는 왜 이직이 하고 싶나?'라고 나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이전에는 지금 하는 일이 지겹고 재미없어서, 그리고 도피성이라는 의미가 좀 더 강했다면, 지금은 조금 결이 다르다. 새로운 환경이 그립다. 익숙한 이 환경도 내게는 소중하지만, 익숙함 속에서 느껴지는 끈적이는 나태함, 그리고 주변인들의 태만함을 보거나 듣고 있자니 내 안의 무언가가 시드는 것 같다. 나는 주변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잘 받고, 또 잘 흡수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그렇다. 화분에 비유하면, 나라는 식물은 꾸준히 주변 환경을 정비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성향의 사람이었다.
아는 언니가 있다. 박봉과 동료와의 불화로 이직을 결심했단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말문을 튼다. '더럽게 갈 곳도 없네.' 그런데 이게 사실이다. 정말 말 그대로 더럽게 갈 곳이 없다. 지역을 사는 동네로 좁히면 더 갈 곳이 없다. 서울권으로 넓히자니 서울로는 다니기가 싫다. 아, 딜레마여. 뭔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 줄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좋으련만, 방향성을 잃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