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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01. 2023

누군가는 쓸쓸할 수도 있을 '이 날'

기다리던 추석이 왔다. 오랜만에 긴 연휴여서 그런지 추석이 기다려졌다. 우리 집은 어느 순간부터 친척들의 왕래가 줄어들었고(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이 미어터지도록 친척들이 드나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면서 사촌들도 자신만의 가족을 꾸리며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 같다.) 부모님과 혈육 모두 직업이 있다 보니 밥은 꼭 같이 먹되 나머지 시간은 알아서 즐기는? 꽤 현대적인 명절문화로 바뀌었다.


취준생 때는 집에 있는 게 눈치 보여서 명절이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나마 왕래가 적은 사촌마저 집에 올 때면 부랴부랴 배낭에 노트북을 넣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갈 정도였으니까. 취업을 했을 때도 마음은 그렇게 편치 않았는데, 비교하는 우리 집안 고유의 문화 때문인지 '누구는 어디에 취업했다더라. 너는 연봉이 얼마냐. 만나는 사람은 있냐. 결혼해야지'등 취업 이후에도 플러스 알파가 되는 잔소리에 지쳐 그랬던 것 같다.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싱글이기 때문에(...) 아직도 두 다리로 온전히 땅을 딛고 친척들을 만날 수가 없다.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가 없거나, 집이 어떻다느니, 여하튼 기분 상하거나 비교당하지 않고 사촌을 만날 날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몸이 느낄 수 있는 때도 추석이다. 밤공기가 이전에 비해 유독 스산하고 쌀쌀해졌다. 튀어나오다 못해 목살처럼 접히는 뱃살을 만지다 학원(자세 교정 학원이라 하겠다.)에서 내준 숙제나 할 겸 아파트에 위치한 헬스장에 가려 집을 나섰다. 한창 내려가던 중,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멈춰 섰고 대가족이 나를 에워싸면서 들어왔다. 인자하게 웃으며 손주에게 이야기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귀여운 아이, 불룩 튀어나온 남편의 배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부인.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나. 사실 별생각 없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외롭다.'


나는 가족이 있다. 그럼에도 내 나이 때 성취하지 못한 가족상을 보며 '외롭다'라고 느끼는데, 가족이 없는 사람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 아파서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혼자 명절을 지내는 사람들은 긴 명절이 얼마나 외로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긴긴 명절이 나에겐 맛있는 명절 음식과, 갸갸호호 웃고 떠들며 아시안 게임을 보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그런 평화로운 일상들로 채워진 힐링 타임이었다면, 이마저도 느끼고 누리지 못할 사람이 많다는 깨달음에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대가족 시대에서 어느덧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핵가족도 아닌 1인 가구도 많고, '가족'이라는 단어의 범주도 꽤 넓어졌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명절은 모두를 품을 포용력을 가지지 못한 것 같다. '명절'의 사전적 의미는 '오랜 관습에 해마다 일정하게 지켜 즐기는 날'이다. '일정하게 지켜 즐기는 이 날'에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주변을 돌보는, 조금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려 노력해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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