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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Oct 16. 2023

삶의 이정표

20년인가 21년에 '목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올해 계획이 뭐냐?'라고 물어본 것에서 시작된 생각과 글감이었다. 이전에도 같은 내용의 글을 썼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사실 20대의 나는 굉장히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었다. 다이어리에는 항상 '연간 목표'를 적었었고, 심지어 그 '연간 목표' 안에서 '월간 목표', 그리고 그 목표들이 하나의 선이 되어 '반기 목표'까지 작성했었다.


내가 순진했던 건지, 아니면 그사이 세상이 많이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당시 20대였던 나의 목표는 재테크나 돈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금 되돌아보면 매우 순수하고 학생다운 목표들로.. 예를 들면, 1) 5kg 감량하기, 2) 스페인어 자격증 따기(★마스터★), 3) 운전면허 따기, 4) 장학금 타기, 5) 뭐 하기 등, 여하튼 내 입장에선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뒤돌아보니 장학금 외에 자격증은 저 중에 하나도 딴 게 없다, 하핫..)


목표를 만드는 건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이정표를 상세하게 작성하고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결산때마다 나는 목표의 60% 정도를 미달성했고, mbti는 P이나 기질적으로 뭔가 완벽주의자 성향이 미묘하게 있던 나는 '목표 미달성'이라는 통지서 앞에 실패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썩 좋지 않았다. 울적했다. 취준생 시절엔 나의 울적함이 배가됐고 '계획대로 되는 게 뭐 있는가? 노력해서 되는 게 뭐 있는가?' 생각하여, 20대 후반, 즉 취업을 하자마자 모든 계획을 없애버렸다.


6월 중순이었다. 캠페인 촬영을 앞두고, 잠깐 짬을 내 촬영장 앞에서 후배와 커피를 마셨다. 나는 회사 사람과는 사적인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사적인 것의 실오라기 하나도 대화에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후배는 아니었나 보다. 갑자기 나에게 본인의 계획과 인생관, 결혼 스케줄에 대해 읊었다.


-"저는요, 과장님. 32살에는 결혼을 하고, 34살에는 아이를 낳는 게 제 계획이에요."

-"나도 20대에는 (참고로 후배는 30대다) 그렇게 계획을 짜서 살았는데, 하나씩 이루지 못하다 보니 도미노처럼 나를 덮치더라고. 그 무력감과 실망감이 너무 나를 우울하게 만들어서 이제는 계획을 짜지 않아."

-"그런데 저는 계획을 짜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제가 20대 때 계획 없이 막 살다보니, 뒤돌아보니까 다른 애들은 다 결혼하고 취업했는데 저만 뒤떨어져 있어서 그 뒤로 계획맨처럼 빡세게 계획을 세워요."

-"세상만사 계획대로 되는 거 하나 읍다~"


저 대화는 분명 4개월 전에 한 대화인데, 10월 중순인 요즘도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비교를 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내 인생에서 큰 변화가 없는 것도, 내가 계획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기 때문일까? 코로나 이후 나오는 자기 계발 서적들처럼 나도 인생 계획을 촘촘하게 짜서 살았어야 했던 걸까?


최근 유튜브에서 조인성에 대한 영상을 봤다. 영상 속 조인성도 나와 비슷한 성향인지 '계획을 짜지 않고 산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편이다. 상황이 마뜩지 않을 때는 그저 이 상황도 내게 필요해서 주어진 거겠지 생각한다.'라는 말을 했다. (나와 똑같은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이 조인성이라 좋았다.) 사람마다 사는 모양이 다 제각각이겠지만, 요즘 다시 '계획을 짜서 움직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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