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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an 27. 2024

집착과 우울의 '덫'

집착의 지배

2021년은 거의 치료를 위한 마라톤이라 해도 무방했다. 한의원까지 포함하면 2021~22년 상반기까지 장거리 마라톤을 달린 셈이다. 엠겔러티, 약침, 교정, 그리고 한약을 거치면서 두통도 좋아지고 있었다. 평균 5회 정도 약을 먹었다면, 한의원 치료 이후에는 1~2회 정도로 확 줄었으니까. 그리고 한의사의 조언대로 두통이 왔을 때 일단 좀 참다 보니, (물론 복불복이다.) 몹시 아팠다가 잠잠해지는 두통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판단은 어럽지만, 그래도 가끔씩 약을 먹지 않고 참아보는 그런 날도 있다. 


5월은 엠겔러티+예방약 복용을 막 시작했을 때고, 11월은 치료를 폭격기처럼 총동원했을 때다.


두통치료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두통에 취약한지'를 알 수 있었다는 거다. 평소라면 몰랐겠지만, 한의원 치료를 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점은 내가 자율신경 조절능력이 약하다는 거였다. 정확한 워딩이나 상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냉방이나 온풍기계에 대한 신체 온도조절능력이 떨어져서 이 점도 두통의 한 요소가 된다 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에어컨이나 히터 바람에도 두통이 찾아오곤 했다. 이런저런 점등을 고려해서, 겨울에 히터나 열기구 사용을 최소화하려 했고, 히터를 강하게 트는 회사에서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 공기순환이 되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런 식으로 두통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말 그대로 치료는 돈을 주고 하는 행위이고,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완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던 기대감은 어느덧 내 마음을 다 덮을 정도로 풍성해졌다. 풍성한 잎은 그늘을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 안에서 뭔가가 무너져갔다. 두통이 오면 이전과 달리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왜 아프지? 나는 이렇게 치료를 열심히 받는데 왜 아프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했다. '내가 돈을 지금까지 얼마를 썼는데, 이렇게 노력하는데 왜 아픈 거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내가 돈을 이렇게 썼는데 머리가 아프면 안 되는 거잖아.


어느 날이었다. 전날도 머리가 아파 약을 복용했는데 아침에도 머리가 아팠다. 몹시 우울했다. 어느 순간 두통이 찾아오면 우울감이 나를 지배했다. 아침 업무를 위해 다시 약을 먹었는데도 두통이 낫지를 않았다. 점심을 먹던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놀란 엄마가 '갑자기 왜 우냐'라고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게 저 말이 불쑥 나왔다. 어쩌면 나는 사용한 돈 보다, 소진한 시간보다, 내가 들였던 노력이, 그리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두통타파'라는 소망이 박살 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온전히 대면할 수도 없었다. '두통타파'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니까.


저런 비슷한 행동이 꽤 오래갔다. 내 기억엔 작년 초까지 진행됐던 것 같다. 일단 머리가 아프면 몹시 우울했다. 예전에는 두통이 오면 '아, 또 머리가 아프네. 왜일까. XXX!!(욕부터 한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라는 단순 분노가 치밀었다면, 본격적으로 꽤 시간을 들여 치료를 시작한 뒤로는 어둠이 온몸을 휘감듯 우울했다. 주로 그 우울은 '내가 이랬는데 이러면 안 되잖아.'라는 식의 생각으로 뻗어나갔다. 


덫이었다. 두통과 생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감정들,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우울감에 가까운 그 느낌은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이 감정이 집착이고 우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지인들에게 내 상태를 토로 하면 서였다. 확실히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면 직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안 되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부정적인 감정의 연결고리를 부수지 않으면, 나는 이상한 피해망상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냥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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