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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03. 2024

인정

그리고 위로의 말

이전에 비슷한 글을 올렸다. '무던함과 버팀, 그 사이'라는 제목인데 브런치와 블로그를 듀얼로 운영하다 보니, 그 글을 브런치에도 올렸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무던한 마음이 제일 좋다고 하지 않나. 두통도 그렇다. 무던함과 버팀, 그 어딘가의 지점에 발을 딛고 있는 게 제일 괜찮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무던함과 버팀, 그 사이'는 늘 내가 있던 지점이었고, 미가펜 단종 이후의 나는 '그 사이'를 벗어나 어딘가의 경계선에 있었던 것 같다.


약 1년 정도 '편두통'만을 위한 집중치료를 하며 스스로도 약간 컨트롤이 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치료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이상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쓰는 편인데, (회사를 다니며 전에 비해 잘 안 쓰긴 한다.) 22년도 일기장은 우울감으로 점철된 약간 특이한 글들이 많다. (집중치료는 21년 여름부터 했다.) 대부분 글은 회사에 대한 권태와 두통에 대한 집착이었다. 집착. 이전 글에도 썼지만 이상하리만큼 두통에 집착하게 됐다. 조금만 아파도 큰일이 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고 우울했다. 정말 너무나도 우울했다.


이상한 집착과 우울은 약 복용에도 영향을 줬다. 물론 지금도 약을 지금 먹어야 하나, 일단 참아봐야 하나, 이 기준점은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맞추는 정도로 헷갈리고 불명확하지만, 까놓고 말하면 저 기준에 대한 답은 없다. 그냥 자기가 알아서 판단하면 되는 거다. 안 먹고도 두통이 나으면 고맙고, 아님 말고.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면 된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 걸, 저때의 나는 약을 먹는 것만으로도, 아니면 저 선택을 하는 상황에 놓인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우울+불안으로 뱀처럼 몸과 마음이 꼬여갔다.


이런 내 마음을 한 번에 풀어버린 건 우습게도 한의원 원장님의 말이었다. 그날도 그냥 치료를 받으러 갔었고, 딱히 나는 의사 선생님과의 필요 이상의 교류를 하지 않기 때문에(여기서 필요의 교류란 몸 상태에 대한 대화를 의미한다.) 무슨 말을 하다 얘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원장님의 말은 간단했다.


고로케씨, 너무 움츠려들지 마요.
아프면 오늘 아픈가 보다,
안 아프면 안 아픈가 보다,
마음 편히 그렇게 살아요. 마음 편히 살아.
그래야 건강해.


저 말을 듣는 순간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침을 후면에 맞기 때문에 변기뚜껑 같은 곳에 얼굴을 집어넣고 엎드려 있는데, 만약 엎드려 있지 않았다면 두 눈에 가득 찬 눈물을 들킬뻔했다. 나의 움츠러듦을 한의사는 느꼈던 걸까. 아니면 내 마음 어딘가 집착광같은 모난 부분이 보였던 걸까.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고, 사실 두통이 완전 치료된 것도 아니지만 지금도 글을 쓰며 저 말을 곱씹으니 괜히 마음 한가운데가 울렁거린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여담으로 저 말을 당시 영어모임 시간에 말하니 그 자리에 있던 네 명의 사람들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very good point, so nice, so warm..이라 외치며 모두 감동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건넨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됐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마음의 재정비를 했다. 재정비도 아니다.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미가펜을 복용하던 10여 년은 '무던함과 버팀, 그 어딘가'에 있어서 아프면 아픈가 보다, 안 아프면 안 아픈가 보다 그렇게 살았었다. (물론 내 인생을 방해하는 두통 때문에 막 화나고 울부짖고 그런 건 있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냥 받아들이는 거다. 그래 인정. 편두통 인정. 고치기 어려움 인정. 다 인정. 너 인정.


등대는 아니지만, 개츠비가 생각나서 찍어봤습니다. 개츠비는 항상 초록 등대를 보며 이루지 못할 꿈을 그리는데요. 두통완치, 두통 제로의 삶을 그리던 제가 개츠비 같네요.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치료가 완전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어깨나 등 통증도 줄었고, 두통도 뭐 어쨌든 구토하고 이런 건 많이 줄었으니 좋아진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이제는 그냥 내 안의 두통을 인정하고,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을 부르는 자세, (는 딱히 없지만) 음식, 그 외에 내 안에서 두통이라는 미친놈을 부르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다 파악해서 두통을 최소화시키자는 결의가 끓어올랐다. 한의사 선생님 말처럼 '마음 편히 살자'라는 생각이 싹튼 것은 23년 초였다. 그리고 나는 내 몸에 대해, 그리고 두통이라는 미친 녀석을 부르는 요인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 글과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병원에서 네*버 영수증 리뷰를 작성해 달라 요청해 작성해 준 적이 있다. 완전히 잊고 살다 어느 날 우연히 내 리뷰 뷰수가 1천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나와 봤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간호사의 댓글이 달려있더라. '원장님은 내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내가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라는 말이 있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말을 단 거 아닌가(현대인의 의심) 살펴봤더니 내 것만 이렇게 달려있어서 또 한 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한마디가 정말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 사이의 친밀도는 상관이 없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내 편두통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신병이 아니냐는 말부터 건넸다.(이 말은 나와 연대해 있는 편두통인들의 공분을 샀다.)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은 정말 크다. 이건 비단 자기계발 서적이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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