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로케 Feb 10. 2024

너 자신을 알라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두통을 인정했다고 하지만 두통과 사이가 좋아진 건 아니었다. 정말 끔찍하게도 싫은 내 인생의 방해자 편두통.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였다. 1) 치료를 잘 받는다. 2) (알아서 잘 판단해서) 두통약을 시기적절하게 복용한다. 3) 두통 유발 인자를 파악해서 최소화시킨다. 그중, 1과 2는 노력여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차치하고, 3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남들은 '두통일기'를 매우 세심하게 작성한다 하지만 나는 두통이 언제 왔고, 약을 몇 개 복용했는지만 기록할 뿐 그 당시의 상황이나 이런 걸 다 기록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30년을 넘게 살면서 어느 정도 두통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패턴을 하나씩 다 기억하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인간이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가? 그렇게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정도 나에게 두통을 유발하는 요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요인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보고 있자면 이게 뭔가 싶고, 웃기지만 생각보다 도움이 됩니다.


음식부터 날씨, 운동, 그리고 그 외의 것들까지 지금까지 파악한 요인은 다양했다. 물론 상황을 재현했을 경우 100% 두통이 온다는 아니다. '두통이 확률'이 올라간다는 거고 실제로 두통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약도, 머리가 아픈 느낌조차 싫어진 나로서는 두통이 오지만 않는다면 위에 기재한 것들은 먹지도 하지도 않을 자신이 있기에 일단 써내려 갔다. 그렇게 써내려 가면 자신을 알게 된다. '편두통에 취약한' 자신의 일부를.


음식

일단 음식을 먹었을 때, 입 안에서 씹혀 잘게 다져진 음식들이 조화롭지 않고 '아?' 하고 튀는 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어떻게 보면 강렬한 msg 일수도 있겠고, 내가 예민하게 감지한 음식의 향일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 두통이 올 확률이 높아진다. 가령, 작년인가 재작년에 유행했던 '바나나 우유에 에스프레소 내려먹기'를 딱 한 번 시도해 봤는데 입 안에서 뭔가 '두통이 올 것 같은 맛'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날 편두통이 왔다. 그 맛과 향은 흡사 헤이즐럿 향과 비슷했는데, 평소 헤이즐럿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두통이 오는 걸 보면 뭔가 나와 맞지 않는 그 맛과 향의 공통요소가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날씨

습도와 두통은 확실히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내 주위의 편두통인들에게 물어봐도 습도가 정말 높은 여름과 장마기간에 편두통 빈도수가 높았고, 겨울 중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그즈음에 두통 빈도가 잦았다. 게다가 나의 경우, 한의사의 말처럼 자율신경계인지 뭔지 여하튼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하는 상황에서 온도조절을 잘 못하는지 강렬한 히터와 냉방에도 취약하다. 그래서 몹시 더운 날과 몹시 추운 날도 두통이 지릿지릿하게 오기도 한다. 날씨는 내가 피할 수가 없는 거라... 가급적 체온이 널뛰지 않도록 관리하는 수 밖엔 없겠다.


운동

내 편두통 원인 중 하나는 과한 승모근의 발달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있지 않나 싶다. 편두통이 그냥 빡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어깨> 목>그리고 머리 순으로 올라와 아프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정말로 현대인의 몸이라 등이 약하다. 등이 약하기 때문에 어깨가 말리고 몸의 축이 앞으로 쏠렸다. 등을 못 써서 어깨나 팔운동을 한다 치면 승모에 힘을 빡 주고 하다 보니 승모가 굳어 아프고 이내 두통이 온다. 이걸 안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작년 5월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 이후로 생전 처음 비싼 돈 내고 pt를 받으며 등 강화 운동을 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폼롤러를 이용해 승모와 목, 흉쇄유돌근을 풀어주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12살 때부터) 수영을 했다. 아빠는 내가 수영선수를 하길 바란건지, 대체 왜 그렇게까지 수영을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늙고 뒤돌아보니 감사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등을 못 쓰다 보니 자유형도 승모의 힘으로 했나 보다. 가끔 수영을 가면, 초급반이 아닌 이상 강사가 대뜸 자유형 10바퀴나 20바퀴 정도를 요청하는데, 다 돌고 나면 두통이 찾아왔다. 당시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팔을 휘저으며 승모에 너무 힘을 줘서 그런 것 같다.


그 외

나를 까탈스럽게 만든다 해야 하나, '그 외의 것들'이 약간 가관이다. (나는 회사에서도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통한다.) 두통이 있으니 향에도 민감하다. 특히 엠버, 튜베로즈, fresh spicy, aquatic 이런 것들이 나를 미치게 한다. 우리 회사는 자율좌석제라 내 옆에, 앞에, 대각선에 누가 앉을지 모른다. 저 네 가지 향조 중 하나라도 누가 뿌리고 오는 날은 자리를 옮겨야 하는 그런 날이 되겠다. 게다가 늦잠, 낮잠, 과식 등.. 평소 내가 즐겨하는 것들이긴 하나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오는 걸 아니까 자제하려 노력 중이다. (너무 졸릴 땐 15분 정도 짧게 낮잠을 잔다.)


안타깝게도 늦잠이 내 두통의 한 요소임을 깨달은 후에 나는 늦잠을 잔 적이 없다. 정말 늦게 일어나면 오전 9시고, 이 이상은 자지 않으려 한다. 평일에는 주로 새벽 5시 정도, 주말엔 8시에 일어나는데, 이런 나를 남들은 부지런하다며 부러워 하지만... 딱히 부지런해서도 아니고 아침형 인간이어서도 아니다. 평일엔 그저 출근을 해야 하니까 일어나는 거고, 주말엔 편두통이 올까 봐 가급적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주말에 저 시간에 일어나도 뭔가를 하진 않는다.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하고 홈쇼핑을 주로 본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정말 명언이다. 저 말은 어디에나 갖다 써도 다 통하는 말이다. 우리는 정말로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지, 뭐가 두통을 불러일으키는지 면밀하게 파헤쳐야 한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체질이 바뀌기 때문에 또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이 친숙해지고, 친숙했던 것들이 나를 괴롭힐 수 있다. 끊임없이 기록하고, 생각하면서 두통 유발 인자를 찾아가는 것. 그것도 나는 치료, 그리고 마인트 컨트롤의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단! 생각에 너무 매몰되지 않은 선에서. 


이전 15화 인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