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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Mar 02. 2024

일상

그러려니가 안 될 때도 있지만요.

두통을 인정하고 난 뒤부터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갔다. 예전 미가펜에 의지하던 그 모습으로. 어떻게 보면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만큼 해봐서 그냥 포기한 걸 수도 있는데, 이전에 두통광처럼 하나하나 집착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 


아직도 출장이나 여행 시 두통이 찾아오는 게 두렵다. 해외출장 시, 편두통보다 더 심한 미친 두통에 공격당한 이후 내 몸은 가시에 찔린 콩벌레처럼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회사에서 출장의 '출'자만 나오면 침이 꿀꺽 삼켜질 정도로 긴장하고(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로 해외출장은 없었다.) 촬영이나 시스템 테스트 등 업무적으로 절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날을 앞두면 '머리가 아플까 봐' 걱정이 된다. 사실 지금 복용하는 이미그란&낙센조합의 효과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 가서 편두통 오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런데 작년 봄, 가을 친구들과 놀러 간 각각의 여행에서 편두통을 맞았다. 봄에 놀러 간 곳에서는 ktx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통의 기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오심까지 진행됐고 결국 숙소에 뻗어 누웠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묻는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편두통이 심하다. 혼자 바다라도 돌고 와라. 이러다 또 나아진다.(는 아니고 나도 사실 몰라 친구야 미안)"라고 말하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프면 아픈 거다. 뭔가 '아프면 절대 안 돼!'라는 강박을 벗어버리기로 했다.


두통카페에 가서 글을 읽으면 안타깝다. 결혼도 임신도 언제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나는 둘 다 두렵다. 아이를 낳게 되면 어쨌든 아이가 우선순위가 될 텐데 두통이 너무 심할 때는 큰 소리에도 고통이 배가 되기 때문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 엄마는 방에 누워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소파 위에서 괴성을 지르며 고양이와 쥐놀이를 하던(...) 나와 오빠에게 체벌을 했다. 그때는 엄마가 무척 예민하고 아픈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뒤늦게 나이가 들고 그 당시 30대였던 엄마가 편두통으로 끔찍하게 고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니 우리 둘을 내쫓지 않은 걸 고마워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요즘 내 일상은 퇴근 후, 2~3일에 한 번 꼴로 폼롤러로 승모근을 풀어주며, 뒷 목을 나무손(*SNPE에서 나온 뾰족한 도구예요.)으로 살살 풀어준다. 게다가 벌이에 비해 과분한 PT를 받으며... 등 근육 강화, 라운드 숄더 완화, 그리고 코어 발란스.. 어쨌든 운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수영이나 홈트 등 나름 혼자서 운동했다면, 지금은 정교하게 다듬는 운동을 하고 있다. 물론 운동을 한다고 두통이 좋아진 건 아니다. 24년 1월 나는 총 6번의 두통약을 복용했다. 내 두통은 이전과 달라짐이 없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올해부터는 이렇게 매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9일은 '죽었다가 살아남'이라 표시했는데 말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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