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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Mar 02. 2024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만.

같이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두통일기는 여기서 끝이 날 것 같다. 마음 같으면 제목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만.'이 아니라, '여전히 두통 없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붙이고 싶다. 나는 여전히 두통과 같이 살고 있다. 두렵지 않다면 이상하겠지만(불시에 찾아오는 두통은 일상마저 파괴해 솔직히 두렵다.) 앞서 꾸준히 이야기한 대로 해 볼 만큼 해봐서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 치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하나 깨달은 점은, 어떻게 보면 막연하게도 단종된 약 때문에 시작한 치료이지만 단종 덕분에 내 두통에 대해 꽤나 심도 있게 고민할 시간을 가졌다는 거다. 가령 내게 두통을 일으키는 요인을 알아내기 위해 이것저것 음식도, 운동도, 생활패턴도 테스트해봤던 것들은 꽤 가치가 있는 행동이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편두통 환자가 있다면, 본인에게 편두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뭐가 있을지 적어보라 권하고 싶다. 아주 사소한 거라도 괜찮다. 마치 내게 '군만두'가 편두통을 일으키는 것처럼.


꽤 오랜 시간 두통카페에 들어가지 않다가, 최근 퇴근길 카페에 방문했다. 여전히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약도 좀 나온 것 같다. 모든 글이 다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안타까웠다. 개중에는 양약이냐, 한약이냐, 도수치료가 효과가 있냐 없냐 등 다투는 글도 보였는데, 솔직히 저 세 가지를 모두 해 본 나로서는 다툼이 부질없어 보였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누구에겐 빅 똥인 것도 내겐 황금이 될 수 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내게 잘 맞는 치료법을 찾으면 된다.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것들은 다 예뻐 보인다.


최근의 얘기를 조금 하겠다. 1월 초중순쯤에 갑작스레 엄청난 두통이 왔다. 재택근무여서 망정이지, 출근했다면 2시간 20분 걸려 길을 터질듯한 머리를 붙잡고 다시 돌아왔어야 했을 거다. 1월 초중순에 나타난 두통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만큼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오전에 머리가 너무 아파 약을 복용했지만 속까지 메슥거려 10분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재택근무라도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티가 나기 때문에 휴가를 냈다. (재택근무는 개꿀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우리 회사는 나름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기 때문에 가끔 화장실에서 조금 오래 푸(poo)를 하고 있어도 전화가 온다.) 


어떻게 누워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옆으로 누워, 똑바로 누워, 최대한 아픈 쪽 (주로 왼쪽이다) 머리를 눌러서 통증을 완화시키려 했지만 무용지물. 오후 3시쯤 비척비척 거실로 나가 대충 김에 밥을 말아 몇 개 먹고 약을 또 먹었다. 이것도 얼마나 속이 메슥거리던지. 정신을 겨우 차린 건 오후 6시쯤이었다. 몽롱한 두통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거의 80% 나았다고 생각해도 좋다. 자기 전에 책상에 앉아 뭐가 이런 발작두통을 일으켰나 생각해 봐도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힌트는, 재작년 비슷한 시기에도 엄청난 두통이 와서 쉬었다는 기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조금 춥게 잤다고 이렇게 머리가 아프면, 밖에서 자면 죽겠다.'라는 글귀도 찾았다. 1월의 추위가 강성 두통을 가져온 건가?라는 생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딱히 없을 때도 있지만 두통이 오면 원인을 찾아보려 한다. 최근엔 '살이 찌면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기 때문에 편두통 올 확률이 높다.'라는 글을 읽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몸에서 20킬로 줄었을 때나, 10킬로 줄었을 때나(몇 킬로가 찐 거지?) 두통은 비슷했다. 되려 그때가 더 잦았지 않았나 싶어 담당의가 살을 5킬로 빼보자는 말을 했을 때도 귀담아듣지는 않았는데, 늘씬했던 때는 또 10년 전이었고, 10년 뒤의 나는 체질이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 생에 처음 다이어트라는 걸 해볼 결심을 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두통은 완치가 없어요. 그냥 이러고 사는 거예요.' 동감하지만, 나는 내 옆에서 두통 완치인을 두 명이나 봤다. 우리 가족, 엄마와 오빠. 이전 글에서 잠시 나왔지만 엄마는 정말 두통이 심했다. 초등학교 때는 건강한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내 기억 속 오빠도 사춘기~군대까지 늘 게보린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둘 다 두통이란 걸 모르고 산다.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두통에 시달릴 그때엔 생간이며 붕어즙이며 온갖 것들과 양약 한약 다 먹어서 뭘 먹고 나았는지 모르겠다 했다. 오빠에게 물어봤더니, 본인은 그냥 제대 이후 자연스레 사라졌다 했다. '자연스레 사라짐.' 이렇게 편두통과 동고동락 하다가 어느 날 나도 '자연스레 두통이 사라졌네요.'라고 말하고 싶다.


아, 그리고 '달리기와 편두통' 때처럼 다이어트를 한 번 해보고 편두통이 좀 줄어든다면, 그때 다시 두통일기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편두통을 앓는 분들, 너무 우울해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그리고 많이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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