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풍선 모가지를 비틀지 않는다.
예전에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가는데요. 만원 지하철이었거든요. 그 작은 자리에 앉은 게 어찌나 행복하던지. 오늘 하루 운수대통이다, 한숨 자려고 눈을 감으려는데 제 앞으로 우르르 사람들이 들어오더라고요. 만원 지하철 그 네모난 칸 안에서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승자잖아요. 음흉한 미소를 짓는데, 어디선가 커피 향이 폴폴 나는 거예요. 눈을 들어서 위를 보니, 제 앞에 서있는 분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들고 후후 불고 있더군요.
아뿔싸. 얼마나 무섭던지. 뚜껑을 조심스레 열고 후후- 불어서 한 모금 마시고. 덜컹덜컹 지하철이 움직이면 가만있다 다시 후후- 불고 한 모금 마시고. 그 모습을 보니까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막말로 저 커피를 쏟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에 뜬 눈으로 앉아 있는 시간이 지옥 같더군요. 결말까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날 저는 하루종일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아침에 ‘오늘 하루 운수대통이야!‘라고 외치던 제 마음은 짜증으로 뒤덮였어요.
경험에 도돌이표라도 붙어 있는지 오늘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퇴근 후 버스를 탔는데, 귀가하는 학생들까지 우르르 모이더니 금세 버스가 꽉 차더군요. 중고등학생 무리 속에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뽀득 뽀드득’ 소리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오래된 버스 의자 소리인가 싶어 신경 쓰지 않았는데 ‘뽀득 뿌드득’ 소리가 왼쪽 귓가에 맴돌아 고개를 돌려봤어요. 아뿔싸. 도대체 왜 풍선을 들고 버스를 탄 건지, 한 학생이 몽둥이처럼 기다란 풍선을 돌리고 꼬고 난리가 났더라고요. 버스에서 풍선 푸들을 만들 기세로 풍선을 돌리는데 저러다 터져서 귓고막이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또 진땀을 뺐습니다.
아이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풍선 학생도 내렸는지 창 밖을 보는데, ‘뽀득 뿌드득’ 소리가 제 뒤에서 나는 거예요. 공포영화 같았습니다. 제 뒤에 앉아서 또 푸들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닭 모가지 비틀듯 풍선 모가지를 비트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화가 나서 도착 정류장 전에 먼저 내렸습니다. 제 마음이 또 짜증으로 뒤덮였어요. 볼일을 다 보고 집에 돌아올 쯤엔 풍선 학생에 대한 화는 누그러졌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공공장소에서 풍선 모가지를 비틀지 않는다.‘ 이게 사회적 통념인지, 아니면 그 학생보다 족히 20년은 더 살았을 제가 만들어낸 막연한 공포심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학생, 마음속으로라도 짜증 내고 화내서(욕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