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혈육인 친오빠가 집을 마련했다. 작년 여름, 다사다난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로 온 것도 공사 완료와 입주시기를 고려해 결정한 거였다. 남매라 해도, 나는 나고 오빠는 오빠인, 서로 각자의 생활이 있기에, 나는 끝까지 서울에 남을까 고민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깡통전세사기가 대한민국을 휩쓸며 월세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그 돈을 주면서까지 서울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 정리했다.
지난 토요일, 오빠네 집에서 이사 예배를 드렸다. 소수의 장로님과 권사님을 모셔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이 물으셨다. "00자매에게 오빠는 몇 점인가?" 모두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90점이요." 모두가 놀랐다. 내가 내뱉은 90점이란 점수가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그다음 날까지 그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모두들 내가 그냥 좋게 점수를 줬다 생각하신 것 같지만, 나는 꽤 진심이었다. 하나씩 따지고 보면 싫은 점도 있겠지만, 오빠는 딱히 나한테 못되게 굴거나 섭섭하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글을 쓰면서 그가 나에게 비열하게 굴었던 행동들이 하나씩 생각나 슬슬 열이 받는다.)
오늘 예배 후, 점심을 먹을 때였나. 오빠와 대화를 하는데 누군가 와서 말했다. "어쩜 그렇게 남매 사이가 좋니? 그렇게 좋을 수 없는데." 그 순간 나는 또 멈칫했다. 그때 우리가 나누던 대화는 '좋은 남매'의 대화는 아니었다. "이따위 청바지를 입고 여름에 다니다니." "네 신발 발 냄새 나게 생겼다. 그걸 돈 주고 샀니?" 등 1주일 만에 만난 서로의 복장을 신랄하게 디스 중이었기 때문이다. 주춤하던 나는 "저희도 집에서 많이 싸워요."라고 말하고 갓 나온 국수를 입에 욱여넣었다.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사이가 좋은 남매인가? 그럼 왜 좋아졌는가? 갑자기 이 부분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면 오빠와 나는 청소년과 성인에 접어들며 그다지 접점이 없었다. 세 살 터울이지만, 오빠는 일찍이 군대를 갔고 제대 후에는 기숙사와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 때문에 나는 오빠랑 거의 집에서 같이 산 적이 없다. (내가 17살, 즉 고1 때 오빠는 이미 밖에서 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오빠는 항상 밖에서 살았고, 나는 본가에 살았다.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니, 최근 5년간의 일이 떠올랐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서울에서 오빠와 함께 살았다. 서교동과 성산동, 두 군데서 살며 생각보다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바퀴벌레 때문에 지랄 염병을 떨었던 사건도 있었고, 회사 근처 한우집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마약을 한 것 같이 미친) 옆집 여자 때문에 같이 고통받았고, 정말 셀 수 없는 에피소드를 공유했다. 그래, 이런 최근의 추억들이 나이 든 두 남매를 돈독하게 연결해 줬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29살쯤에 느꼈다. 취업 준비를 1.5년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어리석게도 그 1.5년을 즐기지 못했다. 매일매일이 우울했다. 상실감과 낙오감에 찌들어 있었다. 뒤돌아보면 그 시간은 내 삶에 있어 몇 안 되는 '쉬는 시간'이었음에도 나는 몰랐다. 물론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오빠와의 시간도 그렇다. 이제 나이가 꽉 찬 남매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성산동에 살 때도 종종 했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이 소중하다. 각자 가정을 가지면 이제 서로에 대해 소홀해질 거다. 같이 앉아 서로의 하루에 대해 구시렁거리던 그날들이 그리울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자.'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