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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Apr 23. 2024

4/23 세계 책의 날과 성채

여담이지만, '성채'. 추천합니다.

오늘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좀 더 정확한 워딩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라 한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알 거다. 'OO의 날'이라는 모멘텀에 맞춰 열심히 홍보를 해야 하는 굴레를... 내가 일하는 업계 역시 'OO의 날'을 무시하긴 어려운 곳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저런 모멘텀을 좀 덜 살리는 것 같아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오늘은 '세계 책의 날'이다. 이 날 만큼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순수하게 기뻐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 오늘이 책의 날인지 모르고 있다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알게 됐다. 이런저런 이벤트를 많이 하길래, 나는 이벤트를 할 여력은 없고, 이날을 맞이해 오랜만에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어 잠자리에 들기 전 몇 자 끄적인다. 


지금은 책 읽는 습관이 완전한 루틴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대학을 졸업한 순간 활자는 읽지 않았다. 내가 읽는 활자는 토플 책이나 기사 등, 공부를 위한 글자가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책은 좋아했다. '읽지도 않는데 뭘 자꾸 좋아한다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단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지는 것도 좋아했다. 욕심도 많아서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빌려오거나 구매도 많이 했다. 이 정도면 책에 대한 '애정'은 넘치도록 있는 거다.


하지만 들끓는 애정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책은 거의 전시물처럼 전시될 뿐이거나 몇 달, 혹은 몇 년 뒤 방 청소를 하면서 중고매장으로 팔려갔다. 딱 그 정도의 흥미였던 거다. 지금은 대략적으로 1년에 3~40권 정도의 책을 읽는데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굉장한 책벌레라 생각하는데 오해다. 책에 몰두하는 달도 있지만, 게임에 빠져 활자를 거의 읽지 않는 달도 있다. (이번 달이다.) 이제는 책 읽기는 일상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나보다 더 많이 읽고, 또 더 나아가 책을 분석하는 분들을 보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에 글을 쓴 것도 같은데, 이렇게까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우연찮았다. 하지만 기억에 남을 법한 아주 재밌는 에피소드다. 같은 팀에 제법 연차가 높으신 과장님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이 팀 내 막내였던 나를 몹시 귀여워해 주셨고,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책 좋아하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저 질문이 단순히 '책/을/좋/아/하/니'로 받아들였기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다음 날 나는 벽돌 두께의 '성채'라는 책을 받게 된다. (지금은 1, 2부로 나뉜 것 같다.)


아뿔싸. 일단 받았고 잘 읽겠다 했는데, 빌린 책 아닌가. 돌려줘야 할 것 아닌가. 그 당시의 나는 거절을 지금보다 더 못했기에 왕복 4시간이나 되는 그 거리를 다니며 미친 듯이 성채를 읽기 시작했다. 그 무거운 책을 에코백에 이고 다니며 아침, 저녁으로 읽었고 주말에도 읽었더니 거의 1주일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다행인 건 성채는 현실적이고, 재미도 있었고,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다는 거다. 1주일 뒤에 성채를 돌려줄 때, 벌써 다 읽었냐고 놀라던 과장님의 표정이 얼마나 재밌던지(후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 누군가를 만나게 됐다. (연인은 아니다.) 그분은 책을 정말 좋아하던 분이었고, 나는 그 사람을 모르지만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 잘 모르는데 마구 친해지고 싶은 그런 사람. 그런데 책을 좋아한다고 하니, 그리고 만날 때마다 '이 책 읽어봤어요?'라고 물으니 어쩌겠나. 미친 듯이 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말한 '이 책 읽어 봤어요?'부터 인스타까지 알아내서 그가 읽는 책은 모조리 섭렵하기 시작했다. 단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대화를 해야하지 않는가. 그렇다. 이렇게 읽기 시작하니 독서라는 행위가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더라.


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 아실거다. 내가 원서를 1~2개월에 한 권씩은 읽는다는걸. 이것도 운 좋게 독서클럽에 들어가면서 1.5년에 거쳐 붙인 '습관'이다. 요즘 미디어는 숏폼 등 영상과 빠른 것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를 우려하는 기사를 많이 쏟아낸다. 그 걱정 어린 시선은 충분히 동감한다. 나 역시 대충 글을 읽다 화들짝 놀라 다시 책을 쥐게 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경험을 돌아보면 '독서'라는 것도 어찌 보면 내 마음이 충분히 동해야 가능한 거 같다. 그게 나처럼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한 수단이 됐던, 아니면 꾸역꾸역 읽어서 돌려줘야 하는 빚이었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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