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밭에서 찾은 교훈
가끔 약속이 없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집에서 종이책과 볼펜을 챙겨 출근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누가 내게 약속 있냐 물으면,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 말하는 날이었는데,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동을 먹지 않겠녜서 냉큼 달려갔다.
뜨거운 우동에 다진 양념을 꼭 푼다. 강렬한 색감과 달리 맵찔이도 먹을 수 있는 다진 양념은 육수에 풍성함을 더해준다. 평소엔 쑥갓이 더 많았는데 오늘은 두어가닥 있는 걸 보아하니, 채소값이 많이 올랐나 보다.
‘유부우동’에 걸맞게 유부가 풍성하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유부에 스며든 국물이 쭉쭉 나온다. 고소하다. 먹으면서도 생각한다. 순탄수인 이 우동이, 왜 난 질리지 않을까.
인턴시절이었다. 같이 들어온 또 다른 인턴을 향해 어떤 대리가 ‘쟤는 멍청한 거 같아. 아니면 바보던가.’라는 말을 했다. 당시 28살이었던 나는 우리가 쓰는 ‘바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 일 못하는 사람에게 절대 ’바보‘라느니, ’머리가 나쁘다‘느니, ’멍청이‘, ’병신‘같은 말을 하지 않겠다 늘 다짐했다. 지금도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저런류의 말은 하지 않는다. 개똥밭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다. 우동을 먹으며 나눈 대화에서 옛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