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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Sep 17. 2021

꿈꾸던 삶을 사는 에이포님께

에이포님,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지난밤 둘째 강아지 감자가 배앓이를 크게 했습니다. 평소 과자를 씹지 않고 삼키고, 남의 밥까지 훔쳐먹던 감자라서 그런지 배앓이를 유독 자주 오래 하네요. 배앓이만 하면 되는데 첫째 강아지가 아픈 감자에게 시비를 걸어서 긍정적 훈육을 하느라 정신없던 밤이었어요. 두 녀석은 모자지간이지만 성격이 전혀 달라, 이 둘을 보고 있자면 자식을 키우는 기분이랄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에이포님의 지난 편지를 읽고 문득 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거나,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나름 외국계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그렇다고 합시다) 20%는 꿈대로 살고 있다 해도 되겠네요. 글 쓰는 삶을 사는 에이포님을 상상해보니 꽤 잘 어울린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포님은 아주 지적인 이미지거든요. 생각하고, 토론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이미지라고 할까요?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에이포님을 상상하면,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거나, 누군가를 위해 말로 대변하는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리고 검정 뿔테안경도 같이 떠오릅니다. 여름날 흩날리던 긴 머리도 함께요... 긴 머리가 자꾸 아른거리는 걸 보면, 횡단보도에서의 그 모습이 저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나 봅니다.(웃음)


지난 휴가 중, 팀 동료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뜬금없는 전화에 '이 사람 뭐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통화를 해보니 그저 그가 대화상대를 원했다는 생각에 충실히 대화를 이어나갔는데요. 갑자기 그가 재택근무를 프리랜서에 비유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그 순간 에이포님이 생각났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에이포님이 저한테 보낸 편지가 생각났어요. 그는 '지금의 재택근무가 각개전투처럼 개인의 실적을 채우는 것과 다름없으니 우리는 모두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게 아니겠냐'라고 토로했는데요. 저는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가 은근 출근을 원한다는 사실에 질색했습니다. 에이포님처럼 저도 재택 만만세 부류 중 한 명이거든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잠시 누워있다가, 강아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원하는 저녁 시간 때 집중해서 추가 근무를 했다가. 일의 능률만 보면 출.퇴근보다 훨씬 나은 이 시스템이 저는 참으로 좋습니다. 재택. 정말 만만세입니다.


에이포님, 이제 내일부터는 추석 연휴네요. 추석 때는 남편분과 맛있는 걸 만들어 드시나요? 저는 추석 때 애들과 산책을 자주 하려 합니다. 두부는 의젓해서 산책할 맛이 나는데요. 감자는 천방지축이라 행인 모두에게 참견을 합니다. 아주 번거로운 녀석이에요. 그래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 볼 때마다 웃음이 나네요. 어쩌다보니 에이포님께 쓰는 이 편지가 찐 강아지 사랑 편지가 된 것 같아 머쓱하네요. 저희가 만나는 날은 11월 슬슬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이 될 것 같은데요. 그날 얼굴을 마주 보며 따끈한 음식을 먹으며 미처 못 나눈 대화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날은 아마 추울테니 머리를 풀어주세요.(웃음)


아, 에이포님. 그리고 남편분께 추석 때는 만화를 좀 그려달라 해주세요. 집착하는 팬이 있다고 꼭 전해주세요.


에이포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고로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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