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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un 06. 2022

답답했던 한 주

오랜만에 두통일지를 써볼까 싶어서 '두통일지2'를 쓰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려서 관뒀다. 남들은 '머리 아프면 약 먹어'라고 편하게 말하지만 내게 있어 편두통은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두통 때문에 임신과 출산이 두려운(아직 미혼입니다만), 출장이 두렵고, 여행이 두려운 내 인생 최고의 허들이다. 그런데 '두통일지2'를 쓰면서 지난 두통을 생각하는 것으로도 속이 메슥거리는 경험을 하고는 '좀 더 몸과 마음이 탄탄해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 동료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머리로 생각하는 게 몸에 진짜 빨리 나타나는 사람이야. 지금도 팀장님이 막 열난다니까 나도 열나는 것 같아."

"어, 저도 그런데요."

"낄낄, 하하, 히히"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 옆 사람이 음식을 먹고 탈이 났는데 그 사람은 나랑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가정하자. 내 컨디션은 100%고 나는 전혀 탈이 나지 않았어도, 그 사람을 보면 갑자기 내 몸에 탈이 나는 느낌이 든다. 느낌에서 그치면 다행이지, 조금만 선을 넘으면 진짜 설사가 나거나 탈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라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어떤 상황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려 노력한다.


편두통 때문에 이런저런 치료를 받으며 컨디션은 나름 괜찮았다. 최상까지는 아니어도 90% 성공궤도를 달릴 만큼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 수준이 무너진 건 2주 전 목요일이었다. 자다 일어났는데 갑자기 찾아온 아마겟돈급 급성 편두통은 나를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급하게 휴가를 냈다. 팀장은 "오랜만에 큰 두통이 왔네"라는 답장을 남겼다. 맞아. 오랜만에 찾아온 큰 두통이다. 약을 하나 먹었다. 잠이 들었다. 낫지를 않는다. 그래도 조금 회복한 컨디션에 기뻐하며 점심을 먹고 약을 또 하나 먹었다. 음!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다음날 오전, 나는 또 두통과 마주했다. 화가 나고 눈물이 났다. 내가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낸 돈만 해도 족히 천만 원은 될 텐데(조금 과장했다) 도대체 왜 이 집안에서 나만 이 지긋지긋한 병과 싸워야 하는가. 눈물을 닦고 그냥 약을 먹었다.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약을 먹지 않아도 그냥 나아지는 두통이 있다. 그걸 구분해 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그 정도로 어렵다. 가끔은 '구분'이 아니라 그냥 '운'같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안 먹어도 나을 통증을 억지로 잠재우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두통약 먹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날도 그랬다. 두통은 점심시간 즈음에 사라졌다.


마음을 다시 재정비했다. 그래, 5월에 두통이 총 3번 왔다. 한 번이 무지 강한 놈이었지만, 뭐 그럴 수 있지. 요즘 강한 두통은 없었으니까. 1년에 한 번씩 강하게 올 수 있다. 이전에 비해 한 달에 먹은 진통제가 3~4개로 줄은 것에 환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대수롭지 않은 생각에도, 선거일에 또 두통이 왔다. 너무 화가 나서 쒹쒹거렸다. 그리고 또 엊그제인 토요일 두통이 왔다. 화낼 기력도 없어졌다. 내 머릿속은 온통 '두통이 온 이유'를 찾느라 바빴다.


'그동안 했던 나름대로의 문제 유발 행위: 낮잠, 과식, 자전거 타기, 어깨 운동, 팔운동.' 두통 원인으로 찾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니 갑자기 현타가 왔다. 이런 평범한 행동조차 못 하면 도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착잡하다. 그래서 마음이 쓸쓸했다. 오랜만에 편두통 카페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회사에도 편두통으로 고통받는 동료가 몇몇 있다. 그중 한 명은 조만간 내가 다니는 병원에 내원한다. 둘이 앉아서 누가누가 더 아픈가 토론이라도 해봐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마다 노력해서 만든 무언가가 무너진 것 같다.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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