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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Mar 13. 2022

내 마음에도 단비가 필요해

일이 있는 날에는 출근을 한다. 공교롭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일이 생겨서 출근하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요즘이다. 그날도 그랬다. 남이 하는 촬영이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촬영이 있구나. 고생하세요. 호호!' 정로도 생각하겠지만, 갑작스럽게 진행된 '내' 캠페인 촬영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아침 6시에 버스에 오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재택을 했다면 7시에 일어나도 7시 출근이 가능한데.. 출근할 때는 5시에 일어나야 겨우 8시 출근이 가능하네'라는 생각이다. 초콜릿 맛을 본 뒤, '단 맛'에 대한 온몸의 감각이 깨어난 어린아이처럼 재택의 단 맛과 편리함, 효율성에 충분히 몸을 적신 나에게 '출근'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의미는 그간 많이 달라졌다. 


두 눈을 끔벅이며 출근을 한다. 미리 예약한 자리를 소독용 물티슈로 박박 닦는다. 일을 시작한다. 오전 일을 마무리하고 늘 그렇듯 아는 사람 몇 명을 모아 점심을 시켜 먹는다. 커피를 한잔 사와 그간 못 나눈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꽃샘추위는 이제 사라졌는지 날이 유독 따뜻했다. 그리고 팀을 옮긴 동료가 출근을 했다. 그녀는 서른 살로 비교적 젊은 나이었는데, 자신의 나이듦에 대해 분을 토했다. '서른 살이면 아직 젊은 나이 아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흔 두 살인 내 동료는 나를 보고 젊다고 생각하니까. 나이도, 느낌도 다 주관적인 거니까. 나는 말을 아꼈다.


커피를 한 잔 사와 자리에 앉았다. 12시 50분. 항상 나랑 마주 보며 앉는 동료가 있다. 그녀가 물었다.

"자기는 요새 말이야. 뭐 할 생각하면 설레어?"


한국말이었다. 영어가 아니다. '헤이, 듀드. 왓 메잌스 유어 마인드 쏘 플레져블 디즈 데이즈?" 이런 말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나는 대답을 못했을까?


아, 나 요새 뭐 하지? 러닝 클럽은 돈까지 주고 가입했는데 나의 귀차니즘과 미루기 실력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한심한 녀석. 독서라고 대답할까? 근데 딱히 '나 독서할 건데. 오, 이 책을 읽으려니 마음이 너무 설레네!' 이런 느낌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마치 티비를 켜는 것처럼 책을 읽는 게 습관화되었을 뿐. 그럼 한의원? '와씨, 나 한의원 갈 때 너무 설레어. 오늘은 어떤 장침을 맞고 괴로울까!' 이것도 아니다. 6개월이 지났지만 한의원 갈 때는 여전히 설사를 할 정도로 긴장한다.   


내 마음은 너무 건조했다. 무미건조. 내 마음에 물을 줘야 하는데 그간 마음을 돌보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수영장 갈 생각에 설레었고,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실 생각에 설레었고, 영화 볼 생각에 설레었는데. 작은 설렘이 주는 기분 좋은 감각이 있었는데, 요새는 '설렘'이라는 단어를 느껴본 지가 별로 없다. (최근에 새로 산 크림을 발라볼 생각에 설렌 정도..)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이구동성으로 '참 어려운 질문이구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심 '휴!'하고 안도했지만 안도할 일도 아니다. 3월에는 채집꾼처럼 '앞으로 나를 설레게 할'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오랜만에 내린 봄비처럼 내 마음에도 물을 줄 필요가 있다. 


+플러스: 동료의 질문에 나는 엉뚱하게도 '독서모임 할 생각하면 설레어요'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요새 그나마 독서모임 활동이 제일 재밌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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